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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57

밀교신문   
입력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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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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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허물 보지 말고 내 허물을 고칠지니 나에게도 무시(無始) 이래(以來) 몸과 입과 뜻으로써 지어 모은 큰 허물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은지라. 내가 먼저 희사하고 그와 같은 큰 허물을 다시 짓지 않겠다고 참회하고 서원하면 나는 도로 복이 되어 일체 고통 소멸되며 내 허물이 없어질 때 상대 허물 없어진다.”(실행론 제3편 제10장 제1절 가)

 

봉림, 그리고 도돌이강

 

포석정이 있었다. 신라시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포석정에 비해 봉림의 도돌이강은 자연판 포석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세월의 흔적으로나 규모면에서도 포석정에 견줄 바가 못 된다. 크기로도 그렇지만 실눈을 뜨고 어림짐작하며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저 좋게 포장해서 둘러댄 억지려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봉우리를 사이사이에 두고 있어 스치는 눈길로 한 번에 포석정다운 형태며 면모를 가늠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물길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유지돼온 것을 감안한다면 새삼 놀랄 수밖에 없어진다.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 생각하면 놀라움은 가히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범위가 다소 넓어서 그렇지 백지도를 펼쳐놓고 그림으로 하나하나 그려놓고 보노라면 단박에 부정할 수가 없어진다. 엄연한 포석정 형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봉림 사이를 가로지르며 셀 수도 없이 촘촘히 생겨난 것을 또렷이 엿볼 수 있어서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흉내 내거나 만들어낼 수 없는 경지를 절감할 수 있다. 숨은 비경의 맛이다.

 

봉림이라는 지명이 도돌이강의 신비를 더하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봉림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즐비한 봉우리가 마치 숲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가는 물론 강을 이루고, 물이 흐르는 강의 가장자리에도 여러 개의 봉우리가 솟아있어서 도돌이강의 존재를 쉬 분간해내지 못하게 하는 면도 없잖아 있다. 봉우리가 이룬 비경과 도돌이강에 깃든 전설은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사람답도록 깨우쳐준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마저 후손들에게 주어진 축복일 것이다.

 

처음에는 봉우리도 없고 강도 흐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깊은 바다 속에서 수만 년 동안 고요를 머금은 채 잠자고 있던 땅덩어리가 한 순간 불쑥 솟아올랐다. 다시 수천 년이 지나면서 이곳에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리며 계절이 번갈아들면서 생명 있는 것들을 불러들였다.

 

습지식물들이 바람을 타고 먼저 이주를 했다. 초목들이 번식을 위해 씨앗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허공을 떠돌다가 어깨를 부딪으며 정착하기 시작한 이끼류와 식물들은 안간힘을 다해서 살아남았다. 모두 어디에서 온지도 모른 채 이웃이 되어 오손도손 손 맞잡고 인내하면서 세월을 견뎌냈다. 식물과 초목들이 정착하면서 허허벌판 대지를 파릇파릇하게 물들이자 스스로 꿈틀꿈틀 거리며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미물들이 땅을 헤집고 나타났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나타난 미물도 처음에는 서로 간에 서먹서먹해하다가 이내 친구처럼 살갑게 지내게 되면서 각자의 보금자리를 일구어 나갔다. 그들을 따라서 더 큰 생물들이 거처를 옮겨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덩치가 제법 큰 동물들도 하나 둘 집을 떠나와 찾아들면서 둥지를 틀었다. 그들의 옮겨 살기는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이치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 가운데 생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문제였다. 욕심에 의해서 사람들이 그곳을 기웃거렸다. 뛰어다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 쫓아오면서부터 그들의 정착은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간에도 구애 받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옮겨 가는 곳마다 그 곳을 지배하는 존재자를 자청했다. 지존으로 군림하게 된 사람들은 새 터전을 발전시키고, 그 속에서 살아가던 생물들과 더불어 살기를 모색하기는커녕 오히려 황폐화시켰다. 살육을 일삼으면서 이내 다른 생명들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몹쓸 곳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거쳐 간 곳은 늘 이런 식이었다.

 

자연은 사람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강을 만들어 냈다. 그 강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정화의 물이다. 들끓는 욕심을 식혀줄 물줄기다. 어울려서 살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기 위한 가르침의 물길이다. 무차별적으로 저지르는 어리석은 허물을 씻어낼 물이다. 군상들을 정화시켜 어우렁더우렁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연의 품은 언제나 이처럼 깊고 넓으며 차고도 컸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크거나 작거나, 풍성하거나 왜소하거나 온갖 시비 거리를 가리지 않고 차별하지도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무엇이든 받아들였다.

 

자연의 정화노력에도 사람들은 수용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갖은 수를 부려서 그물망을 빠져나갔다.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급기야 자연은 스스로 정화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강가로 불러 들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끌려오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자리를 잡아 앉혔다. 스스로 돌이켜볼 줄도 모르고 깨닫지도 못하며 정화를 하지는 더더욱 못하니 강물에 모습을 비춰서 자신들의 본성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사악한 사람들은 그조차 믿으려 하지 않았다. 강물에 이상한 장치를 해 놓아서 조작할 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급기야 사람 앞에 또 다른 사람을 내세워 서로를 바라보거나 내뱉는 말을 듣고서 자신을 반추할 수 있도록 했다. 이마저도 처음에는 극도로 저항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받아들였다. 행동거지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정화의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마침내 상대방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자기와 같은 완전체까지는 아닐지라도 무언가 모르게, 말로 다할 수야 없는 동질감 정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커다란 성과였다. 다르다고 회피하거나 멀찍이 하면서 멀뚱멀뚱 소 닭 쳐다보는 것처럼 하던 때 보다는 많이 나아진 결과였다. 닮은 것을 확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생각해도 상대방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또렷하게 각인하면서 유유상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주한 사람을 우연하게 대면한 것이 필연에 의해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엄청난 변화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허허벌판에 생명이 깃들기 시작한 이래 거듭된 진화가 사람의 마음까지도 변화시켰던 것이다. 서로 마주하면서 단순하게 비슷함을 느낀 뒤에는 먼 시대부터 조상들 간에 서로 이어진 관계성까지도 유추하기에 이르렀다. 서로 얽히고설킨 나뭇가지가 한 뿌리를 의지해 자라나고 무성하게 뻗쳐 있듯이 사람은 모두 태초에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생겨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부터 달라졌다.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는 비로소 인연의 굴레를 알아차리고 서로서로를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강을 사이에 두고는 있지만 같은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서히 그들이 인연으로 맺어진 또 다른 자기라는 사실을 믿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가슴으로 먼저 설득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서로 비슷함을 받아들이고 어느새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넘어서서 다르지 않다는, 둘이 아니라는, 상대가 남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내려놓은 묵은 업() 덩어리가 강가에 하나씩 쌓여갔다. 그것이 쌓여 봉림을 이루고, 그 둘레를 흐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돌이강도 만들어졌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