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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에 대한 생각

이경자(소설가)   
입력 : 2004-05-12  | 수정 : 200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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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여성이 먹거나 바르면 몰라보게 젊어지고 아름다워진다는 신문 광고는 그다지 눈길을 끌지 않는다. 그런 글귀에 마음이 휘둘리는 여성은 이미 그와 같은 것에 대한 지식과 상식, 정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광고는 글자보다 사진이 먼저 사람의 눈길을 빨아 당긴다. 노란 색의 풍성하고 길게 출렁거려 보이는 머리에 푸른색의 눈을 가진 여성. 영화배우 같은 분위기다. 독자는 그 서양여성의 얼굴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인상을 마음에 익히게 된다. 물론 그 신문의 독자는 거의가 한국 사람이다. 어린이날 행사를 알리는 유명 백화점의 전단지가 신문에 끼어왔다. 흰색원피스를 입은 행복한 표정의 어린이는 서양인형으로 익히 보아온 모습이었다. 몸의 살을 몰라보게 뺀 탤런트가 다이어트 회사의 광고에 나왔다. 전에 어느 연속극에서 그 탤런트를 볼 때 통통하고 귀엽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몸은 물론 얼굴도 반쪽이 되었다. 무언가 기운이 다 빠져버린 그런 느낌이 드는 사진인데 가슴은 키우고 배는 홀쭉하고 다리는 길고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다. 동양여성의 몸매는 저렇지 않을뿐더러 사람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가졌듯 몸매도 제각각이어야 자연스럽다. 주말 연속극을 보는데 여자 탤런트들의 얼굴이 지난주와 달라졌다. 언젠가도 그렇게 달라졌던 적이 있었다. 코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서 갑자기 흉하게 보이는 탤런트도 있다. 그런 높은 코는 동양여성의 얼굴에는 기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여성의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자고 하면서 왜 그 모델을 서양여성으로 하는 것일까. 지금 세상에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살아있는 생명에서 아름다움을 빼앗아 가는 것은 그 생명이 자기 자신으로 있지 못할 때 뿐이다. 그러니까 할미꽃은 할미꽃일 때 아름답고 나리는 나리여야 아름다운 것이다. 할미꽃이 자기가 싫어서 백합 흉내를 낸다거나 나리꽃이 장미로 모양을 고쳤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보기 싫고 비참하고 역겹기까지 할 것이다. 여성이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지는 건 삶의 조건에서만이 아니라 자기 생김새에 대해 존중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끝없이 타인을 흉내내려는 열등감이 깊어지면, 그것은 영혼의 자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