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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29-상대자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

편집부   
입력 : 2018-04-30  | 수정 :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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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로 본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산은 산으로 보아야 하고 물은 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상 만물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평등하게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절대적 가치란 연기적으로 작용하는 무한 변신의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영원한 것이 없으며 언제나 항상 변하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존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변하는 것을 보아야 하며, 보이지 않는 변하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주체는 없습니다. 언제나 인과 연의 작용에 의한 또 다른 존재로의 변화만 연속적으로 일어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애착으로 인한 잘못된 견해로 특정한 시간과 한정된 공간에 집착하여 온갖 분별을 만들어 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옳고 그르며 좋고 나쁘며, 이렇고 저러한 편견과 갈등, 시비와 투쟁을 일삼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허상(虛相)이 아니라 실상(實相)입니다. 그 실상이라는 의미는 영원하다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으로 변하는 무상의 이치를 담은 현상(顯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기적으로 나타나는 그 실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실상은 바로 나의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이요, 나의 습이 만들어내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의식이 인식하는 모든 사실적인 현상은 나의 것입니다. 나의 연기적 활동이 만들어내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현상 속에 활동하는 연기적 법칙이요, 이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개체를 통하여 전체를 아는 것이고, 전체를 통하여 수없이 이루어지는 개체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각(覺)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 각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의식은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의식이 깨어 있음은 연기적 작용을 알아차리는 것이며,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은 긍정적 인식을 통한 받아들임을 말합니다.

내가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인식작용에 의한 나의 작품입니다.

좋고 나쁜 것도 오직 나의 생각이며, 옳고 그름도 오직 나의 판단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일체유심조‘라 말합니다. 우리가 깨쳐야 할 이 세상을 만드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을 먹어야 어떠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지금 내 마음이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나의 삶에 나타나는 사실적 현상입니다.
내 삶의 설계자는 바로 나이며, 내 인생의 시공자도 바로 나입니다.
잘못된 인생의 모습에 그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잘못된 설계는 나의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시공의 잘못은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두운 마음은 밝게 해야 하고, 좁은 마음은 넓혀야 합니다.
모가 난 마음은 원만하게 해야 하며, 작은 마음은 크게 바꾸어야 합니다.

부정적 사고는 긍정적 사고로 바꾸어야 하고,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행동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성을 밝혀 모두가 본래의 모습인 부처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욕망으로 점철된 중생심으로는 자성을 밝히기가 어려워 자성을 가리고 있는 허물을 찾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의 허물을 바로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를 바로 세우는 수행이며 자성을 밝히는 열쇠입니다. ‘상대자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 그것은 나의 잘못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는 길이요 자성을 밝히는 부처님의 법입니다.

거울을 통하여 모습을 보듯이 상대의 현상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을 알고 마음작용의 근본까지 알아 간다면 그것은 분명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길입니다.

정진심 전수/탑주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