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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 정사-알기쉬운 교리문답 71

편집부   
입력 : 2018-04-16  | 수정 :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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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진리관(眞理觀)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제(二諦)에 대해 알려주세요.

세간의 존재는 모두 무상하며 찰나에 변화해 갑니다. 따라서 어떠한 것도 ‘이것’으로서 파악될 수 없어요. 파악하는 순간에 상태가 바뀌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존재가 파악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말이 대변해 주고 있어요. 이러한 공(空)의 입장에서 존재 즉 법(法)을 이해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제일의제(第一義諦) 또는 승의제(勝義諦), 진제(眞諦)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법이 공하다고는 하지만, 세간의 모든 현상은 천차만별로 현현(顯現)하기 때문에 ‘나’와 ‘너’의 상대적 세계가 성립하고 있다는 사실도 역시 부정할 수는 없어요. 이처럼 상대적으로 연기(緣起)하고 있는 개개의 존재와 현상을 현실 긍정의 측면에서 인식하는 입장을 세속제(世俗諦) 또는 속제(俗諦)라고 합니다. 소위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 영역의 모든 일상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속하지요.

부처님이 설하신 제행무상의 진리에 따르면 영원히 미개한 나라도 없고, 또 영원한 선진국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이나 유럽인들은 동물 똥으로 집을 짓는 아프리카인에게 미개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탓하는 격이지요. 왜냐하면 과거의 그네들은 더 심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여성들이 즐겨 신는 하이힐이 어떻게 생겨난 줄 아세요? 중세 유럽에는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거리는 온통 오물투성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드레스에 오물을 묻히지 않으려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었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내부에 화장실을 짓지 않았답니다. 성스럽고 아름다운 궁전 안에 더러운 화장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지요. 덕분에(?)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요강을 휴대해야만 했고, 깜박 잊고 온 이들이 궁전 정원이나 복도 커튼 뒤에 몰래 실례를 하는 일은 예사였다고 해요. 악취를 감추기 위해 향수가 개발되었고, 창밖으로 버려진 분뇨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신사들은 높은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게 된 겁니다.

이쯤 되면 거의 준(準) 아비지옥 수준 아닙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이라도 화장실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무용지물인 거예요. 세상사 경사(慶事)가 있으면 애사(哀事)가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듯이 제행이 무상함을 안다면 ‘깨끗하고 성스러운 것’에 대한 집착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겠지요.

승의・세속의 한쪽을 거부하지 않고 이들 모두를 진리로 수용하는 관점은 대승불교의 철학적 근간을 집대성한 용수(龍樹) 이래로 꾸준히 계승되어왔어요. 공덕천과 흑암천이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듯이, 진리와 현실 역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왔던 겁니다. 이러한 승의와 세속을 생활불교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해나가면 좋을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불법은 체(體)요 세간법(世間法)은 그림자가 되므로 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곧고 체가 굽으면 그림자도 굽는다. 그러므로 불법과 세간법이 본래 다르지 않아 불법이 바르게 서고 흥하는 데 국가도 바르게 서고 흥왕(興旺)하는 것이다.” (「대한불교진각종을 세우는 뜻」, 『실행론』 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