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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실전같이 실전을 연습같이

편집부   
입력 : 2018-04-16  | 수정 :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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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제각각의 종교적 의례나 의식이 있습니다. 형식을 중시하든 내용을 중시하든 혹은 복잡하게 보이든 단순하고 간단하게 보이든 모든 의식과 의례는 저마다의 이야기와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유교의 제사의례는 조상을 통해 하나의 생명공동체임을 확인하고 도덕적 원리를 사회 안에서 실현할 의무를 갖추게 합니다. 불교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모든 의식을 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의례와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체험적 관계에서 ‘사람은 의례의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의식이나 의례를 통하여 새로 태어나고 새로운 차원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종교의식이나 의례는 사회의례로서 공동체 안에서 우리 자신의 고유한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고 이에 따른 내적 성찰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러한 의례의 내적성찰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거룩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종교의식은 우리 인간의 생명성을 지속시켜주고 완성시켜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례를 통하여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갑니다. 우리 삶의 환경이나 조건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분주하고 획일화된 삶은 의례를 상실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도를 갖출 때 차 맛이 나듯이 삶의 내용도 형식과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의 본질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합창이나 오케스트라도 같은 맥락입니다. 개개인의 소리와 각각의 악기들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내야하는 소리의 음색과 고저와 장단이 각각 다릅니다. 개개인의 소리에 최선을 다하되 일정한 형식과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주위의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내고 그 소리들은 아름다운 향연으로 나타나지요.

한편 회당대종사는 ‘불공의범’을 통해서 진각종의 진언행자들이 지켜나가야 할 공식불사의 규범에 대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자성일을 청정히 지킬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공식시간 불사를 위하여 법계대중이 모일 때는 같이 모이고 흩어질 때는 같이 흩어지며 삼밀을 할 때는 같이 삼밀을 하며 게송 할 때는 같이 게송하고 참회할 때는 같이 참회하여야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집합하고 마지막 참회서원 할 때까지 특별한 연고 없이는 출입함이 불가합니다. 심인전당에 들어와서 걸음을 걷고 앉고 서고 할 때에는 반드시 침착하고 정중하여야 하며, 출입하는 자에게 인사나 곁눈질이나 웃거나 기타 모든 합당치 못한 행동을 일체하지 말아야하고, 스승이 설법하는 도중에 그 설법의 존엄성을 무가치하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는 것이요, 자기와 자기의 가정과 전세계 인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정법을 실천케 하고 해탈케 하는 진실한 불자가 되어야합니다.

심인전당에서 행하는 공식불사에 있어서는 스승의 지도하에 수순하고 행동을 일치하여야 하며 시작과 마침에 있어서는 반드시 제정한 참회와 선정의 원칙법을 꼭 실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진각종은 회당대종사의 재새시 초기역사부터 불공의범으로써 대중불사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한 공식불사 의례를 통해서 심인을 밝히고 진각을 실현하는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각종의 대중불사의식은 종교의례로서의 ‘수행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부처가 되어가는 연극적 행위로서의 ‘연행성(演行性)’을 보여주고, 삼밀관행의 ‘반복성’을 통하여 의례의 의미가 심화되어갑니다.

‘심인당은 금강법계 비로자나 궁전이라’는 가르침에서 볼 수 있듯이 심인전당에서는 진언행자가 지켜 나가야할 비로자나 궁전에서의 예법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삼밀은 원락(源樂)삼밀[유상삼밀]과 항상(恒常)삼밀[무상삼밀]이 있습니다. 유상삼밀은 시간을 정하여 갖추어 행하는 것이라면, 무상삼밀은 일상생활 가운데 몸과 입과 뜻으로 어긋남 없이 복 짓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심인전당에서 행하는 유상삼밀은 일상생활 속에서 참 부처됨을 실천하는 무상삼밀의 연습과정입니다.

유상삼밀을 통하여 무상삼밀을 완성해가는 것이지요. 심인전당만 비로자나 궁전이 아니라 우리들 일상생활의 삶의 터전 모두가 바로 비로자나 궁전입니다. 삶의 공간이 바로 심인전당이고 그리고 의례의 실천공간입니다. 훌륭한 운동선수는 ‘연습을 실전같이 그리고 실전을 연습같이’ 한다고 합니다. 연습과 실전이 따로 없습니다. 참된 진언행자에게는 심인전당과 일상의 삶의공간이 삼밀행의 연습공간이자 실전공간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는 신성하고 거룩한 의례가 되고 인격완성을 이루는 무대가 됩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