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11-입으로 바른 업을 짓다

밀교신문   
입력 : 2018-02-26  | 수정 : 2019-04-03
+ -

떡을 위한 침묵, 그 딱한 중생심

어느 부부에게 떡이 세 개 생겼습니다.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떡이 참 맛있어서 하나 더 먹고 싶었는데 남은 떡은 딱 하나뿐이었습니다. 서로 상대 눈치만 보다가 한 사람이 제안했습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우리 둘 중에 먼저 말을 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오. 이기는 사람이 이 떡을 먹기로 합시다.” 

떡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부부는 내기에 들어갔습니다. 일절 입을 열지 않고 그저 몸짓과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면서 버텼습니다. 외마디 비명이라도 상대의 입에서 먼저 터져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부부는 버텼습니다. 환한 낮이 지나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어둔 방 안에서 부부는 떡 하나를 행여 빼앗길까 상대방을 지켜볼 뿐 등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때 문이 달그락 달그락 합니다. 평소 같으면 부부는 ‘누구지? 누가 오기로 했소?’라고 말을 건넬 텐데 오늘은 그런 말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떡이 걸려 있으니까요.

문이 살그머니 열렸습니다. 열린 문으로 누군가 조심스레 들어옵니다. 도둑입니다. 밖에서 집안 동정을 살피던 도둑이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기에 빈집이거나 주인이 깊은 잠에 빠졌다고 생각하고서 문을 따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선 도둑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주인 부부가 버젓하게 두 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부도 도둑을 발견하긴 했지만 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떡이 걸려 있으니까요. 그렇게 소리도 치지 않고 당황해서 상대방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도둑은 이제 들켰으니 도망쳐야겠지요. 그런데 황급히 도망치려고 몸을 돌렸다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한하네. 어떻게 낯선 사람이 침입했는데도 두 사람이 아무 말을 하지 않지?’
주인 부부를 시험해보고 싶어진 도둑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집안 물건 하나를 제 보따리에 넣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두 눈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떡 하나를 응시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사납게 훑어보고 째려볼 뿐입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 찼을 뿐입니다.

담이 커진 도둑은 집안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하나하나씩 제 보따리에 쓸어 담았습니다. 그래도 부부는 조용했습니다. 도둑은 이 부부에게 뭔가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둑에게 장난기가 일어났습니다. 슬쩍 그 집의 아내에게 손을 뻗쳤습니다. 아내는 심하게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냈다가는 떡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도둑은 그 아내에게 노골적으로 추근대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을 비틀며 저항하던 아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습니다.

“이 못된 놈아.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내의 비명에 남편이 소리쳤습니다.
“이겼다! 떡은 내 거다.”
<백유경> 67번째 이야기입니다. 경에서는 이 에피소드를 들려준 뒤에 다음과 같이 설명을 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그들을 비웃었다. 범부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모두들 조그만 명예나 이익을 위하여 옳지 않은 일을 보아도 잠자코 조용히 있다. 그러다가 헛된 번뇌와 갖가지 악한 도둑의 침략을 받아 선법(善法)을 잃고 삼악도에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도 두려워할 줄을 몰라 세상을 벗어나는 도를 구하지 않는다. 여전히 다섯 가지 욕망에 빠져 놀면서 아무리 큰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으니, 떡 하나에 온통 정신이 팔려서 소중한 것을 빼앗겨도 그 위태로움을 모르는 저 어리석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

여기서 다섯 가지 욕망이란 눈, 귀, 코, 혀, 몸(5근)을 단속하거나 절제하지 못해 눈으로 보는 색,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혀로 보는 맛, 몸으로 느끼는 감촉(5경)에 마음이 이끌리고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바깥의 모든 대상(法)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에서는 맛있는 떡이 다섯 가지 욕망에 해당합니다. 보기 좋고 냄새 좋고 맛 좋고 식감 좋은 떡에 집착을 한 바람에 소중한 아내가 위험에 처해 있어도 나 몰라라 하고 있는 남편의 어리석음에 빗대어, 옳지 않은 일을 겪고 있으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중생을 질타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교 집안에서 무심코 하는 말이 있습니다.

“구업 짓지 마라!”
그래서 불자들은 가급적 말을 아낍니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업을 짓는 일이요, 그건 결국 괴로움만 불러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말을 해야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하면 세상이 시끄러워지니 침묵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과연 ‘구업’은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구업이란 아시다시피 입으로 짓는 업, 그러니까 말을 뜻합니다. 구업을 짓는다는 것은 ‘말을 한다’는 뜻이지요. 업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뜻으로 짓는 업입니다. 그런데 업에 대해 아주 커다란 오해를 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업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을 짓는다는 것이 아주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고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업에는 선업과 악업의 두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수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선업을 지으십시오.”라고요.
물론 선업을 짓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악업부터 멈추는 일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선업인지 악업인지 잘 살펴서 그것이 악업이라면 그것부터 멈추어야 하며, 그리고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곱 부처님께서 공통으로 당부하시는 노래(七佛通誡偈)에도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힘써 행하며, 그 마음 스스로 맑게 하라.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악업을 짓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선업을 지어야 하며, 선업 짓는 일만 전부가 아니라 선업을 짓는 틈틈이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서 번뇌를 없애는 것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이 공통적으로 중생들에게 당부하는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구업 짓지 마라!”가 아니라 “입으로 짓는 악업(口惡業)은 멈추고, 입으로 선업(口善業)을 지어라!”라고 해야 합니다. 입으로 짓는 악업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거친 말, 꾸며대는 말입니다. 입으로 지어야 할 선업에도 네 가지가 있는데 초기경전인 <맛지마 니까야> 41번째 경인 ‘살레야카숫타(살라 마을 장자들을 위한 경)’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거짓말을 떠나고 삼갑니다. 증인이 된 자리에서 추궁이나 질문을 받을 때,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고 알면 안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보지 못했다면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고 봤으면 봤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혹은 뭔가 이득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둘째, 이간질을 떠나고 삼갑니다. 여기서 들은 말을 저기에 말하여 이쪽 사람들의 화합을 깨지 않습니다. 혹은 저기에서 들은 말을 여기에서 말하여 저쪽 사람들의 화합을 깨지 않습니다. 말을 할 때에도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말이 아니라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셋째, 거친 말(욕)을 버리고 삼갑니다. 나아가 말이 부드러워 듣기 좋고 유쾌하고, 우아하고,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듣기를 바라고, 들으면 좋아할 만한 말을 합니다.

넷째, 과장하여 꾸며대는 말을 버리고 삼갑니다. 때맞추어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뜻 있는 말을 하고, 성자의 가르침을 말하고, 윤리에 어긋나지 않은 말을 하고, 올바른 때에 근거 있고, 이치에 맞고, 절제하고, 유익한 말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입으로 선업을 짓는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세속의 재가불자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십니다. 침묵이 금이라고 하지만, 침묵이 능사는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 사는 세상에 침묵도 중요하지만, 말을 해야 할 때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게 선업이기 때문입니다.

옳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옳지 않은 일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떡에 집착해서(탐욕), 내가 먹을 떡을 다른 이가 빼앗아 먹을까봐 화가 나서(성냄) 사람들은 입을 다뭅니다. 그러다 떡 하나 챙기느라 자신이 어떤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어리석음). 탐진치 삼독에 눈이 멀어 말해야 할 때 입을 다물어버린다면, 저 가련한 남편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11. 떡을 바라서 입다문 부부.jpg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