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2.아축여래(阿閦如來)

밀교신문   
입력 : 2018-01-29  | 수정 :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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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묘희세계의 부처님

아축여래(阿閦如來, Akṣobhya-tathāgata)는 보리심이 금강과 같이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부동불이라 하며, 무동불(無動佛)·무노불(無怒佛)·무진에(無瞋恚)라고도 한다. 정토사상을 설하는 가장 오래된 경전 중 하나인 ‘아축불국경’ 2권에서 다음과 같은 아축여래의 기술을 볼 수 있다. 


동방으로 천 개나 되는 불국토를 지나 아비라제라는 이름의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의 부처는 ‘집착하는 바 없이 바르고 평등하게 깨달으신 대목여래(大目如來)’라 하였다. 모든 보살을 위해 육바라밀에 관한 설법을 할 때 한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르게 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맞잡고 대목여래께 여쭈었다. “오직 바라옵나니 귀하신 분 가운데 귀하신 분이시여.······저는 지금부터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고자 하여 성냄과 음욕 등을 끊어 정각을 성취할 때까지 정진하겠나이다.······” 그 비구는 대서원을 세운 다음 오랜 겁 동안 정진하여 성도한 뒤, 불가사의한 무량한 세계 가운데에서 지금도 설법하고 있다. 그를 아축이라 이름하며, 아축여래가 있는 곳은 성냄이 없으므로 아축지(阿閦地)라 한다.


여기에서 대목여래를 향해 대서원을 발한 비구가 바로 아축보살이며, 이 비구가 성불함에 의해 아축불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어 현재까지 동방 묘희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시다 한다. 

그리고 <비화경>에 의하면 아축불과 아미타불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과거 항하의 모래알보다 많은 아승기겁을 지나서 산제람이라고 하는 불세계에 있었다. 그때 대겁의 이름은 선지(善持)였고, 그 겁 중에 전륜성왕이 있었는데 이름은 무쟁념(無諍念)으로서 4천하를 다스렸다. 그리고 보해(寶海)라는 대신이 있었으며 그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는 32상을 갖추고 영락으로 몸을 꾸미고 80종호를 차례로 장엄하였으며, 백 가지 복덕으로 모습을 성취하여, 항상 광명이 한 길만큼 비추니, 그 몸의 원만 구족함이 마치 니구로나무와 같아서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았다.

그가 태어날 때 백천의 모든 천신이 와서 함께 공양하였으므로 이름을 보장(寶藏)이라 하였다. 그 후로 장성하여 머리와 수염을 깎고 법복을 입고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명호를 보장여래라 하였다. 그리고 무쟁념왕과 그의 아들들이 부처를 공양하고 정각 구하기를 서원하였으며 그 뒤 왕은 아미타불이 되고 아홉 번째의 왕자인 밀소가 아축불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아축불과 아미타불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아축불이 불교계에 등장한 것은 아미타불과 거의 비슷한 시기로 여겨지고 있다.

이상의 경문 등에 의하면 아축여래와 그 나라는 성냄과 음욕 등의 번뇌를 여읜 오묘한 기쁨의 경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내외적 장애를 제거하며, 진리가 갖춘 영원성·보편성을 명확히 밝히는 역할을 담당하는 부처로 수행자의 깨달음을 향한 마음이 동요되지 않도록 그 마음을 진정시키는 여래이므로 아축불을 부동불이라고도 한다.

 

아축여래의 명호를 칭념하면 분노가 가라앉고 동요됨이 없는 굳건한 보리심을 내게 된다는 공덕이 있어 한때는 아축여래에 대한 신앙도 대단했다. 또한, 아축여래를 신앙함으로써 마음이 선해지고 상쾌해지며, 혹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환희의 세계에 몰입할 수가 있다고 하므로 이 세계를 선쾌, 또는 묘희국이라고도 한다. 

묘희란 절대적인 기쁨을 나타내며 그것은 우리의 참모습이 바로 여래라는 것을 볼 때의 기쁨이다. 여래에서 여(如)는 참으로 평온한 연기실상의 세계에서 세계와 함께 흘러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그 자체로 연기실상의 관계 속에 전개되는 하나의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에서 자기를 떼어내고 남을 성립시켜서 나와 남의 분별 속에 자기라는 집착의 전개를 이어가는 힘이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 어리석은 마음에 따라 탐내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탐내는 마음은 세계와 나를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개별화되며 고정된 모습만을 자기의 삶으로 여겨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힘에 의해서 생겨난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힘 속에는 대상이 되는 상대와 내가 다르다고 구별하는 힘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가져서는 안 되고 내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힘은 탐내는 마음으로 전개되고, 싫어하는 것을 배척하는 힘은 결국에 성내는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내는 마음에 대해 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불의 경지에서는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게 되며 실상으로 흐르는 힘이 강해질수록 연기의 흐름 속에서 참된 생명을 살고 있는 나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언제나 크고 원만한 거울과 같은 마음에서 온 우주가 하나인 원만하고 참된 성품을 보게 된다. 이것이 무명의 분별로부터 근본적인 연기의 삶으로 전환되는 지혜와 자비의 세계이며 이것이 바로 아축불이 상징하는 묘희의 세계인 것이다. 

 

일찍부터 불교계에 등장한 아축불은 후에 밀교의 만다라에 편입되었으며, 만다라에 편입된 뒤에도 성내는 마음을 없애는 아축불의 성격은 그대로 계승되면서 독특한 역할이 주어졌다. 밀교에서는 오지여래 중 사방사불의 하나로서, 금강계만다라 성신회에 37존 5해탈륜이 있는데 그 중 동방 월륜의 주존으로 있으면서 비로자나여래의 대원경지와 본래 갖추어진 견고한 보리심의 덕을 나타낸다. 아축불이 동방에 자리 잡은 것은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동방이 수행의 최초단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태장만다라에서는 동방의 보당불과 같은 서원을 갖고 있는 부처님이라 그와 동체로 한다. 인도의 후기 밀교에서는 대일여래에 대신하여 오불 가운데의 중존으로 되기도 하였다. 이 여래의 형상은 태장계에서 청색의 몸에 왼손 다섯 손가락으로 옷의 끝을 잡아서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무릎에 얹고, 손가락 끝이 땅을 가리키는 촉지인을 결한다. 금강계에서는 왼손을 금강권으로 결하고 배꼽 앞에 둔다. 이것도 항마부동의 뜻을 나타낸다. 독존으로서는 거의 조성되지 않고 있다.

아축불을 중심으로 한 금강부의 제존은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장애를 제거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금강부의 제존은 무기인 금강저로 번뇌를 물리치며, 그중 아축불은 항마촉지인으로 마귀를 제압한다. 불전에 의하면 석존이 성도할 때, 석존의 성도를 두려워한 마신들이 박해하고 유혹하며 방해하자 석존이 대지를 가리키며 자기의 보리심을 일으켜 마신을 항복시켰던 인계이다. <약출염송경>에는 ‘아축불의 촉지계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부동을 얻는다’고 하며, <제불경계섭진실경>에는 ‘파마인을 결함으로써 모든 마귀신과 온갖 번뇌를 움직이지 않게 한다. 이것은 비나야가 및 모든 악마 귀신을 멸하는 인이라 이름한다’고 그 결인의 공덕을 설하고 있다. 성내는 마음을 제거하는 아축불의 금강부는 다시 그 성냄이라는 마음의 작용을 수행으로 활용하여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기에 금강저라는 무기를 들고 마군을 항복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약출염송경>에는 ‘그 동방에 위에서 설한 바와 같은 코끼리 자리가 있다. 아축불이 그 위에 앉는다고 관해야 한다’고 하여 이 부처의 자리를 밝히고 있다. 코끼리가 의미하는 것을 <금강정경의결>에 의해 알아보면, ‘코끼리의 힘은 모든 짐승의 힘보다 강하기에 금강부왕은 거기에 머물며 그 위에서 견고한 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코끼리는 제석천의 탈 것으로 우주의 대생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축불은 절대의 힘, 우주의 대생명의 무한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삼매야회에서는 연꽃 위에 가로로 누운 오고저가 있고 그 위에 세로로 오고저를 두고 있다. 아축여래의 색은 <제불경계섭진실경.에 ‘자신과 산천초목 모두를 청색으로 관하라’라고 하는 기술을 통해서 청색임을 알 수 있다. 청색은 항마를 상징한다. 

이상과 같이 아축여래의 색, 인, 좌, 방위 등은 이 부처가 대일여래의 성격 가운데 분노·항마·용기 등의 부분적 성격을 지녀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성위경>에는 ‘최초에 무상승(無上乘)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아축불의 가지에 의하여 원만하게 보리심을 증득한다’고 아축불의 역할을 밝히고 있다. 결국, 아축불이 상징하는 부동과 아축불의 묘희세계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크나큰 장애인 성냄을 가라앉히고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보리심을 내는 절대적인 기쁨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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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축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