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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23

편집부   
입력 : 2018-01-29  | 수정 :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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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행실천으로 많은 공덕 지으세요.

설날이 다가옵니다. 새해에 이어 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허망한 덕담이 오갑니다. 복이란 게 누가 가지라고 해서 오나요? 제가 가진 복을 나누어주지 않고서야 어찌 복이 저절로 주어지겠습니까?

불자라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보다 ‘공덕 많이 쌓아 행복하시라’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일반적으로 ‘복’이라 하면 인간의 힘을 초월한 어떤 존재에게 빌어서 구하거나 우연하게 얻는 좋은 운수라는 뜻이거든요. ‘행복’과는 또 다른 개념입니다.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는 말로 스스로 노력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전자가 로또 당첨 같은 느닷없는 행운이라면, 후자는 스스로 노력하여 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공부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것도 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무엇이 행복한 삶일까요? 돈 있고, 권력만 가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공덕을 쌓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아무리 강한 권력을 지녀도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덕이 뭘까요?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좋은 업을 쌓는 행위입니다. 모든 자연과 사람들이 서로 연기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작은 그물코가 무한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그물로 정의하셨습니다(중중제망重重帝網). 각 그물코들이 서로 단단하게 얽혀 있어야만 그물은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곳만 허술해져도 다른 그물코들이 느슨해져서 그물이 위험해집니다. 모든 그물코들이 다른 그물코가 안전하기를 서로 살피고 느슨해진 부분을 함께 힘을 합쳐서 단단해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공덕 아닐까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는 삶이야말로 공덕을 쌓는 길이요, 궁극적으로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인 셈이지요. 공동체의 이익, 상생하는 세계는 곧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남의 사정을 살피지 않고 자기의 복만 추구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지요.

공덕을 쌓는 가장 좋은 수행법이 있습니다. 육행실천입니다.
육행의 첫째는 보시布施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법보시,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보살피는 무외보시,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 희사하는 재보시가 그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계입니다.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과 악담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는 다섯 가지만 지켜도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게 됩니다. 지계는 자리이타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거든요.

세 번째는 인욕, 욕심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을 해칩니다. 자기 그물코를 단단하게 할 욕심으로 다른 그물코를 잡아당긴다면 그물이 안전해질 수 있을까요?

네 번째는 정진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져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마음은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참회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선정,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본성을 유지해야만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제 마음이 어지러울진대 어찌 공동의 이익까지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여섯 번째는 지혜입니다.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마른하늘에도 날벼락이 칠 수도 있으며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원인이 있었으니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닙니까? 또 불행에는 분명히 세간에서 말하는 ‘조짐’ 즉 ‘당체법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롭지 못하여 알아채지 못할 뿐입니다. 연기와 당체법문을 아는 것이 육행의 마지막 지혜를 갖추는 것입니다.

남보다 자기를 먼저 내세우는 것이 모든 불화와 싸움의 근원이 됩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자기만 복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세상의 이치를 어지럽게 하죠. 자신만의 복을 구하기에 앞서 공동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육행, 이것이 바로 공덕을 쌓는 일입니다.

“새해에는 공덕 많이 쌓으십시오.”

이행정 전수/보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