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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48

편집부   
입력 : 2017-08-31  | 수정 : 20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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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 밝히는 날

“절에서 평생 출가로 사후를 제도하지만 진각종에서는 자성일 하루 출가로 일주일을 복되게 하고 일주일 출가로 현세를 복되게 한다. 심인공부를 하지 않을 때에 자성불공을 궐하여도 무관한 것은 마음이 밤과 같이 어두워서 고통 중에 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인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성불공을 궐하면 손해가 일어나게 되는 것은 자성이 낮과 같이 밝게 되니 깨쳐 알게 된 것이다.”(‘실행론’ 제3편 제5장 제2절 마)

심출가

한 마을 전체가 울긋불긋 꽃 대궐을 만들어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미얀마는 온통 황금빛이었다. 탑으로 이룬 수풀, 곧 탑림(塔林)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즐비하게 널려 있는, 황금빛을 두른 파고다가 빚어낸 장관이었다. 그런 미얀마의 속살, 만달레이구 한 마을이 순식간에 꽃 대궐로 변신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찾은 미얀마. 순지의 눈에 들어온 미얀마는 온통 황금의 나라였다. 눈에 띄는 파고다 대부분이 황금으로 장식돼 있어서였다. 실제 눈으로 보면서 황금의 나라라고 여기기 이전에는 탑의 나라이고 불교의 나라라는 얄팍한 지식만 있었다. 미얀마는 그렇게 순지에게 다가왔다.

신쀼의식을 취재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하고 또다시 설계하다가 허물기를 수차례 거듭한 연후 미얀마를 찾은 순지였기에 벅차오른 감회는 천지를 진동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미얀마의 관문 양곤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할 정도로 볼거리 천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신쀼의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이드 겸 통역을 만나 숨 돌릴 틈도 없이 만달레이로 향했다.

신쀼의식이 열리는 날 아침은 소리부터 다르다고 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선잠을 자고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온 순지는 가이드와 함께 동네를 한 바퀴 휘둘러보기로 했다. 자분하게 피어오른 듯싶은 물안개가 이른 아침의 정적을 보듬어 안은 것 같았다. 밤새 갖은 정성을 들여 직조한 베 한 올이라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소담스레 품은 아낙의 기도와 정성스러움을 지켜보는 것 같아 눈자위가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물안개를 뚫고 길로 나서니 화려하게 장식된 흙 담이 보였다. 집 주변에 있는 나무 위에도 온갖 장식물이 치렁치렁 걸려 있어 만국기를 달아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장엄이 잘 되어 있었다. 흙 담이 제법 길게 이어진 집을 지나면서 모퉁이를 돌아드니 자그마한 집이 나왔다. 그 집의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출입문 위에도 장식물을 올려놓기는 매 한가지였다. 집이 크거나 작거나, 화려해보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차별이 없었다. 높이 솟은 파고다나 나무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거대한 장식물로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꽃 대궐을 꾸며놓은 것이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서 아침을 먹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온 동네를 진동시킬 듯 요란한 악기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조금 있으면 신쀼의식이 시작될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마음이 급해진 순지도 채비를 서둘렀다. 카메라를 챙기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취재용 가방을 둘러메고, 모자를 눌러쓰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 출정준비가 완료되자 순지는 가이드보다 앞서서 성큼성큼 숙소를 나섰다.

첫 번째 집을 지나고 두 번째 집도 지나쳐서 악기소리가 나는 집을 찾아 내달렸다. 다섯 번째 집 앞에서 놀이패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놀이패 뒤로는 금실로 치장한, 하얀 비단옷을 입고 보관을 썼으며 금장신발을 신은 어린이가 서 있었다. 손에는 금색모형인 듯해 보이는 칼도 들었다. 그야말로 황금의 나라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자태를 가졌다. 얼굴은 화려한 화장을 했다. 평소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따나까를 한 맨얼굴이 아니었다. 생애 최초의, 그야말로 진하게, 그 옛날 인도의 왕자와 같은 화장과 치장을 한 것이다. 어린이 주변으로는 부모와 일가친척인 듯해 보이는 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전날 밤부터 초대를 받아 음식을 공양 받고 잔치에 동참한 일가친척들이라고 가이드가 일러주었다. 그것 또한 전통이라는 말이었다.

한 스님이 그 집에서 나와 놀이패 앞에 자리를 잡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면서 악기소리가 질서를 잡았다. 이내 행진이 시작됐다. 스님의 주도로 마을공동체 축제행렬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님 뒤로 인도의 왕자분장을 한 어린이가 따르고 놀이패가 뒤를 이으며 연주를 하자 일가친척들도 행렬을 따라 걸음을 떼었다. 행렬이 이웃집 앞에 도착하자 그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린이가 왕자분장을 한 어린이 뒤로 들어서서 줄을 이었다. 그 집 앞에 서있던 부모와 일가친척들도 행렬 맨 뒤쪽으로 가서 줄을 만들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집집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을 모두 빨아들인 대열은 마을 전체를 돌면서 거대한 행렬을 이루었다. 그렇게 해서 마을 어귀에 다다른 행렬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대열을 정비했다.

어린이마다 치장한 정도와 분장은 달랐지만 얼굴에 따나까를 하고 흙먼지 날리던 길을 내달리며 뛰놀던 천진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치장한 왕자들에 다름 아니었다. 대열의 맨 앞에 서 있던 어린이 머리 위에는 황금으로 칠을 한 일산이 씌워졌다. 왕자신분이었던 라훌라의 출가전통을 본뜬, 완연한 전통의식을 재현해 낸 것처럼 보였다. 신쀼의식을 위해 쏟아져 나온 어린이 모두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인생 최고의 날이 될 수 있도록 화려한 의식과 완벽한 설정을 한 것처럼 보여 전통의 힘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신쀼의식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준비해둔 코끼리며 마차에 오르기도 하고 차량에도 올라탔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옛날 코끼리나 마차를 준비할 수 없었던 가정의 어린이들은 아버지의 무동을 타기도 했다는 말을 가이드가 들려주었다.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신쀼의식에 동참하는 어린이를 둔 가족과 일가친척들은 공양물을 들고 뒤따랐다. 동네어귀까지 따라 나왔던 이웃들은 축하의 손을 흔들며 행렬을 배웅했다.

행렬이 파고다에 도착하자 분장을 한 어린이들은 그들을 인도하는 스님을 따라 법당을 돌면서 불상마다 예배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해서 예배의식을 마무리한 다음에 삭발을 하고 수계의식을 이어갔다. 출가공덕은 국민이 된 의무이기도 하지만 법을 상속하는 것이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공덕을 쌓는 길이라는 믿음과 신념으로 이어오고 있는 전통의 힘을 신지는 엿보았다.

미얀마 국민들이 신쀼의식을 행하는 의미를 곱씹으면서 신지는 심출가를 떠올렸다. 집을 떠나고 몸을 던져서 행하는 출가가 아니라 비록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몸가짐이나 마음 씀씀이에 있어 출가자 이상의 본분사를 다한다는 심출가. 신쀼의식 취재를 준비하면서 몇 해 전에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계행도 마찬가지라 했다.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하는 것처럼 오히려 선한 쪽으로 장려하고 북돋움으로써 근원적인 것을 바르게 하는 것, 부끄러운 그른 마음 없게 함이 계행이라는 말이 진실된 가르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진각. 누구나 본래 갖고 있는 자기 내면의 성품과 기능을 찾아내서 희사, 계행, 하심, 용맹, 염송, 지혜 등 육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생활불교, 실천불교의 참 보살행을 드러내는 가운데 잘 사는 삶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자리가 현세극락의 자리며 이구성불의 이치라는 사실도 알 수 있을 듯 했다. 심출가는 바로 그런 것이라는 단정을 하면서 신지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얀마 스님들의 대중공양 장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