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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은 농사꾼

박 도 (작가)   
입력 : 2003-10-15  | 수정 : 200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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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시골에 다녀왔다. 지난 봄 여름은 유난히도 비도 많이 내리고 태풍 피해도 심했지만 그래도 계절 순환은 어김없어 수확의 가을이 찾아왔다. 시외버스 차창 밖으로 오곡이 무르익은 들판 풍경도 좋았고, 아스팔트 국도 언저리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길도 정감이 갔다. 이런 길을 지날 때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시골집 담 안의 감나무에 달린 빨간 감, 산길 들길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뿐하게 웃고 있는 들국화를 바라볼 때에는 세파와 공해에 찌든 몸과 마음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황금빛 들판을 가로지르자 대부분의 논에는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일부 논에는 벼가 드러누워 있듯이 쓰러져 있었다. 트랙터로 벼를 베는 농사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논의 벼는 괜찮은데 왜 옆 논의 벼는 쓰러졌습니까?” “지난 장마 때 쓰러졌지요. 그 논 주인이 일으켜 세웠으나 지난 태풍에 또 쓰러졌어요. 애초에는 그 논의 벼가 제일 잘 자랐지요.” 나는 농사꾼의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사람의 교육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이 없고 욕심 많은 농사꾼은 남보다 농사를 잘 짓는다고 일찍 모를 내고 거름도 많이 줬다. 처음에는 농사꾼의 뜻대로 벼가 무럭무럭 잘 자랐다. 하지만 장마가 지고 태풍이 몰아치자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곧장 쓰러져 버린 것이다. 오늘의 일부 부모들은 욕심 많은 농사꾼처럼 자녀 교육에 너무 극성을 떤다. 유아기 때부터 자녀의 능력은 고려치 않고 수준 이상의 교육을 강제로 시킨다든지, 남이 장을 가니까 거름지게 지고 장 가듯 덩달아 너도나도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몬다. 그런 탓인지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학력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학부터는 뒤쳐져 버린다. 늘 주입식 교육에만 익어버려 창의력도 없고 모험심도 없다. 자녀 교육에 왕도는 없지만, 그러나 사람도 자연의 한 일부인 이상 자연의 순리를 거역한 교육은 큰 부작용을 낳는다. 어쩌면 인생은 마라톤 경기와 같다. 초반에 자기 페이스보다 더 빨리 뛴 선수는 얼마 못 뛰고 곧 기권 아니면 쓰러져 버린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자녀 교육에는 느긋함이 필요하다. 부모의 극성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지나친 극성은 오히려 자녀의 인생을 망쳐 버리게 한다. 마치 장마나 태풍에 먼저 쓰러지는 농작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