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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맹난자(수필가)   
입력 : 2003-04-15  | 수정 : 200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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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루의 자목련나무가 창틀을 배경으로 봄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봉긋하던 꽃송이가 이틀 새 만개되더니 산뜻하게 낙화하지 못하고서 지금은 추하게 나뭇가지에 말라붙어 있는 것이 꼭 주검의 잔해처럼 보입니다.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봄꽃의 무상함과 생명의 덧없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불과 일주일의 머뭄, 그렇게 빨리 지나갑니다. 봄이 지나가고, 젊음의 시간이 지나가고, 인생이 황급한 길로 줄달음을 내칩니다. 나이 듦에 대하여, 노후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기회가 많아집니다. 계단을 오르는 걸음이 전만 못하고 순발력과 지구력이 떨어지긴 해도 사물에 대한 감회와 감동은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파괴와 살상과 인간애에 대한 보도에는 더 큰 자극을 받게 됩니다.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오늘 아침 TV로 바그다드의 폭격현장을 지켜보며 화염에 휩싸인 정부청사, 자국민의 어떠한 희생보다도 자신의 자존심만이 우선 순위인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화가 치민 부시 대통령의 얼굴, 자신의 안위를 저버리고 반전을 위해 인간방패로 나선 이름 없는 평화전사들의 거룩한 얼굴들이 그 위에 겹쳐집니다. 한 생명이라도 더 지키고 살려내겠다는 거룩한 지장보살님의 서원. 그만 코끝이 매워지고 맙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지구의 청정함과 평화가 지켜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이 천여 명의 인간방패가 어깨를 걸고 전쟁을 반대하는 동안에도 부녀자와 많은 어린이가 희생되었습니다. 사상자도 많았습니다. 1991년인가. 걸프전에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각종 질병과 암에 걸린 어린이들의 숫자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어린 생명들은 자라나기도 전에 어른들의 이기심과 위정자들의 분노로 그만 어이없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틱낫한 스님의 '화' 내지 않기와 명상은 절실한 테마로 부상하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분노는 인간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