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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영측

맹난자(수필가)   
입력 : 2003-03-18  | 수정 : 200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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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일(日), 달월(月), 찰영(盈), 기울측(仄)'은 '천자문' 셋째 구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천자문'을 지은 중국의 주흥사(周興嗣)는 천지, 우주를 말한 다음 세 번째로 해와 달을 언급하였다. '일월영측.(日月盈仄)' '천자문' 4언 250구 가운데서 나는 이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평범한 한마디에 비범한 역(易)의 진리가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번 찼다가 한번 이지러지는 달을 나는 한번도 애상(哀傷)없이 바라본 적이 없다. 특히 귓불이 쨍한 겨울 날, 하현달을 바라볼 때는 그 감회가 더 했다. 해도 달처럼 일출과 일몰을 거듭하지만 유난히 나는 달에게서 차고 이지러짐의 영허소장(盈虛消長)의 비애를 느끼게 되곤 하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바뀔 '역(易)' 자를 해와 달의 일월(日月) 합성자로 풀이하여 해(日)는 양(陽)이며 달(月)은 음(陰)이라고 정의한다. 낮은 양이며, 밤은 음이다. 생(生)은 양이며, 사(死)는 음이다. 꽃피는 춘하절은 양이며, 조락과 죽음의 계절은 음이다. 그래서 주야가 교체되고 한서는 반복된다. 그럼에도 나는 시들어 가는 화단 앞에 서면 어김없이 일왕일래(一往一來)의 비애를 곱씹게 되곤 했다. 그러나 양은 길한 것이며 음은 흉한 것이라고 역(易)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양은 대등해서 한번 '양(陽)'하면 한번 '음(陰)'이 될 뿐이니 공정무사한 자연의 질서요, 자연의 운행법칙이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밤과 추위와 죽음은 싫어하고 낮과 따뜻함과 삶만을 희구한다. 나 또한 지난날의 일을 잠시 고백하자면 길흉화복에 매여 흉이나 화(禍)는 싫어하고 길함과 복만을 좋아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일월영측'이 넌지시 내게 타일러주는 것이 아닌가. 해는 뜨면 서산으로 지기마련이요. 달은 차면 이지러지기 마련 아닌가. 이후로 나는 길흉화복에 덜 급급하게 되었으며, 언짢은 일에도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