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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능성적은 아주 작은 하나의 잣대일 뿐

성윤숙(위덕대 교수)   
입력 : 2003-03-18  | 수정 : 200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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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말, 당시 예비고사를 치른 뒤 점수가 발표된 날의 기억은 정말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게 주어졌던 그 성적은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냉혹했고 어떤 말로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여태껏 그렇게 정확한 나에 대한 평가는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았고, 더 이상 몸부림을 치더라도 그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당시 340점 만점이었던 예비고사에서 내가 받았던 그 알량한 점수는, 생각해보면 학교를 파한 뒤 시화전에 들린다거나 시내 한 모퉁이에서 벌어진 각종 행사장을 누비면서 깎여나갔던 점수에, 정규수업 이외의 학교에서 열린 각종 이벤트에 열정을 쏟으면서 깎였던 점수,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무수한 핑계들을 갖다 붙이면서 합리화했던 수많은 날들로 이래저래 깎여나간 점수들이 누적되면서 나는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심취했던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매일 시험에 만점을 받기 위해서만 살 수 있단 말인가? 며칠 전 수능시험을 끝낸 고3 수험생들을 보면서 당시의 내가 가졌던 나에 대한 실망감과 그런 나를 합리화하면서 스스로를 추스르던 과정들을 떠올리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 좌절감을 맛본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3 수험생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한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기 나름대로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어, 자기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있으면 그 곳에서 자기가 원하는 꿈을 펼치면 된다는…. 또한 지금까지 닦아온 날들의 점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다소간 욕심을 비우면 마음 저 밑에서부터 또 다른 용기가 솟아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꼭 어느 대학을 갔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누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성실했는가? 그래서 그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가늠할 수 있기는 하다. 여러 모습으로 수많은 날들을 살아갈 수험생들에게 오늘의 수능 성적은 아주 작은 하나의 잣대일 뿐 모든 꿈을 덮어버릴 만큼 흔들리지 않는 지수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