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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와 백비(白碑)

맹난자(수필가)   
입력 : 2003-03-18  | 수정 : 200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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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사극 '여인천하'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종결편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역시 인생무상(人生無常)이었다. 사극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한결같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불타오르는 복수심. 그리고 예외 없이 하향곡선을 그으며 파멸과 죽음으로 떨어지는 그들의 말로를 보면서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신분 상승의 목적을 이룬 정난정의 탐욕스런 손에 과연 무엇이 남았던가? 복성군을 위해 대권에 도전한 경빈 박씨의 처절한 모성, 그 경빈의 전철을 되밟은 희빈 홍씨, 문정왕후와 세자(인종)와의 대립, 반목, 질시, 암투… 끝없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 저편의 씁쓸한 음영을 보여준 드라마였다. 형태를 달리하나 지금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여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목격하게 된다.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한 비열한 인신공격, 그렇게 해서 얻어진 소득이란 과연 어떠한 과보와 연결되는 것일까? 사후(死後)의 몸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이번 역사에서 소중한 기록 한 줄을 건져내었다. 중종은 38년 간의 재위기간 중, 열 명의 부인에게서 9남 11녀를 두었다. 헌데 정작 왕위가 돌아간 곳은 마음을 비운 창빈 안씨의 소생이던 덕흥대원군 댁으로 그 서기가 옮겨간 일이다. 덕흥대원군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특히 막내인 하성군 균을 명종은 총애하였다. 명종이 후사 없이 서거하자 왕위가 균에게 돌아가니 그가 바로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이시다.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으로 고충을 겪었으나 학문과 백성을 사랑한 명민한 임금이었다. 39년 간 나라의 요직을 두루 지낸 박수양이 세상을 떠남에 운상비조차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명종은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여 예장을 치러 주었고 전라도 장성땅 그의 무덤 앞에 백비(白碑)를 하사하였다. 그 비에 비문을 새겨 넣는다는 게 오히려 고인에게 누가 될 듯 싶어 백비로 그냥 두셨다니… 명종의 심정, 어느 한 자락이 되짚어진다. 그리고 아무 말씀 없는 그 백비에서 보다 진실한 말씀을 웅변으로 전해 듣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