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28

허일범 교수   
입력 : 2002-05-06  | 수정 : 200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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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장엄의 삼밀화 1. 십육관경도와 수미단 충남 서산의 상왕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개심사는 원래 백제의 의자왕 때 혜감 스님이 창건했으며, 고려시대에 처능이 중창불사를 하여 사찰의 규모를 확장시켰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성종 때 중창불사가 있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중수불사가 이루어졌다. 현재 이 사찰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안양루, 심검당, 무량수각, 명부전, 팔상전, 오층석탑 등의 문화유산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잘 보존되고 있다. 여기서 심검당은 조선초기의 건축물로 조선건축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안양루의 문루에 걸린 '상왕산 개심사'란 현판은 근세의 명필인 해강 김규선이 쓴 것이다. 그 중에서 대웅보전 안의 후불탱화와 수미단의 장엄은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본당에는 독특한 장엄의 연엽대좌 위에 봉안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해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십육관경탱화가 있고, 수미단에는 육자진언과 파지옥진언이 쓰여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법당의 장엄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밀교적 표현양식이 도입되어 있는 것이다. 즉 후불탱화는 중앙의 일관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불보살의 형상으로 된 여섯 종류의 관상도를 나타내고, 오른쪽에는 상징물을 가지고 여섯 종류의 관상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밀교적 측면에서 보면 존형에 의한 형상적 표현과 삼매야형에 의한 상징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미단의 상단과 하단에는 진언을 써 놓았는데 이것은 문자를 가지고 불보살을 나타낸 문자불로 볼 수 있다. 즉 개심사의 본당장엄은 밀교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조선시대 불교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2. 형상과 상징과 문자 먼저 탱화의 왼쪽에 그려진 여섯 종류의 관상도는 상단으로부터 팔상관, 진신관, 관음관, 세지관, 보관, 잡상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불보살의 존형을 가지고 나타낸 것으로 형상관도라고 할 수 있다. 이들 형상관에는 불상을 보고 아미타불의 모습을 관하는 팔상관, 아미타불의 진정한 모습을 관함으로써 일체제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진신관, 아미타불의 협시인 관세음보살을 관하는 관음관과 대세지보살을 관하는 세지관, 일체정토의 불보살을 관하는 보관, 그리고 관음관, 세지관, 보관을 할 수 없는 자가 대신과 소신의 아미타불을 관하는 잡상관이 있다. 이들 관상도는 밀교의 만다라관중에서 존형을 관하는 대만다라의 관법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즉 대만다라의 관법에서는 수행자가 경전의 내용에 따라서 불보살의 존형을 떠올리면서 만다라를 형상화해 가는 것으로 그것은 무형의 관상만다라를 형상의 만다라로 전환시켜 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 여섯 종류의 관상도의 경우도 경전의 내용에 입각하여 마음속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등의 모습을 형상화해 가는 존형의 관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탱화의 오른쪽에 그려진 여섯 종류의 관상도는 상단으로부터 차례로 수관, 지관, 보수관, 팔공덕수상관, 보루관, 화좌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상징적인 모습을 통해서 불보살의 세계를 나타낸 삼매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상징관에는 물과 얼음의 아름다움을 관해서 극락의 대지를 관하는 수관, 수상관을 완성하고 극락의 대지를 관하는 지관, 극락의 보수를 생각하는 보수관, 극락의 연못물을 관하는 팔공덕수상관, 극락의 보루를 생각하는 보루관, 아미타불의 연화대좌를 관하는 화좌관이 있다. 이들은 밀교의 관법중에서 삼매야형을 관하는 삼매야만다라의 관법과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즉 삼매야만다라의 관법에서는 불보살의 존형을 특징적으로 규정하여 상징적인 모습만을 관하는 것으로 이 때에는 불보살의 지물이나 상징을 관법의 대상으로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탱화에 나타난 여섯 종류의 상징적 관상도의 경우도 존형이 아닌 상징물을 통해서 불보살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심사의 십육관경탱화는 단순한 불화로 보이지만 실재로 형상과 삼매야형을 가지고 불보살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웅보전의 수미단에는 문자불의 세계를 나타낸 육자진언과 파지옥진언이 쓰여 있다. 이것은 아미타 십육관경탱화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후불탱화에서 형상과 상징을 통해서 불보살에 대한 관상도를 나타냈기 때문에 여기서는 수미단의 진언을 가지고 문자불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대웅보전을 장엄한 당시의 선인들은 이와 같은 구도아래 불보살의 신구의를 후불탱화와 수미단을 통해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3. 삼밀장엄의 출현 불교의 의식들은 대부분 신과 구와 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것은 신업을 통한 예경이고, 입으로 경전이나 진언을 독송하는 것은 구업을 통한 예경이다. 그리고 불보살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염불은 의를 통한 예경이다. 한편 의식집행자나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와 같은 예경법은 그 자체가 수행이자 공덕성취의 방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사찰의 장엄에 활용한 것이 개심사 본당의 십육관경탱화와 수미단의 장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후불탱화와 불단의 문자장엄을 통해서 불보살의 세계와 행자가 추구해야 할 구극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이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이 낳은 독특한 사찰장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선시대가 되면 육자진언이 신앙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불교의 법구류나 사찰의 장엄에서 범자로 육자진언을 써넣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있는 개심사에서 십육관경탱화를 후불로 봉안하고, 수미단에 육자진언과 파지옥진언을 써넣어 불보살의 신구의를 나타낸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사찰에 아미타불이 아닌 다른 불상이 봉안되었다면 십육관경탱화에 의한 존형관과 삼매야관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며, 육자진언만이 수미단에 쓰여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개심사의 본당장엄은 우리나라의 다른 사찰에서 발견하기 힘든 삼밀장엄으로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