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24

허일범 교수   
입력 : 2002-02-28  | 수정 : 200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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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밀교의 진언결계법 1. 진언결계의 의미 조선시대 밀교에서 나타난 독특한 양상중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진언결계법이다. 이 결계법은 진언다라니를 가지고 불단이나 불화의 테두리를 장엄하여 결계하는 방식이다. 조선시대에 이와 같은 진언결계법이 이루어진 것은 당시에 성행했던 진언다라니신앙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경우 결계는 수행도량을 수호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조선시대와 같이 온전한 밀교의 행법이 전승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경궤에 의한 결계법은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기서 성장엄다라니경에서 설하는 결계다라니 장엄법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진언결계법이 등장했던 것이다. 불화의 바깥 테두리에 진언종자를 써넣음으로써 불의 세계와 세속을 구분하기도 하고, 탱화의 뒷면에 진언종자를 넣어 후방을 결계했다. 또한 불단이나 건축물을 장엄할 때, 진언종자를 써넣는 방법으로 단상과 도량을 결계하기도 했다. 밀교에서 결계법은 성과 속의 세계를 구획 짓기 위해서 쓰인다. 여기서 성과 속이란 부처님과 중생의 세계, 수행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 등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결계는 불보살의 세계를 수호하고, 성스런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수행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수행자로 하여금 심적인 안정을 유지시키기 위해 활용된다. 이와 같이 결계는 공간의 성역화를 위하여 설정되는 것이다. 수행자는 계율을 수지함으로써 수행자다운 자신을 유지할 수 있듯이 수행공간도 결계를 함으로써 외적 장애를 방지할 수 있는 성역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인도에서는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때, 짐승이나 독충, 벌레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개자를 주변에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 밀교에서는 이것을 수용하여 밀교의 교리와 행법에 맞도록 전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밀교의 결계법이다. 거기에는 유형과 무형의 결계가 있다. 유형의 결계에서는 오대를 의미하는 오색의 실로 수행자가 설정한 공간을 에워싸는 방식을 쓴다. 그리고 무형의 결계는 밀교의 관법을 통하여 무한한 공간을 필요한 만큼 설정하여 행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유형과 무형의 결계가 혼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는 결계가 있다. 이것은 인과 진언과 관을 통하여 행하는 결계법이다. 이것은 정형화된 밀교경전이 성립되면서 보편화되었고, 현재에도 티베트와 일본의 밀교에서는 행법상에 수용되어 있다. 여기서 조선시대의 진언결계법은 이 결계법의 일부를 전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2. 진언결계의 양상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부분의 사찰은 단청으로 장엄되어 있다. 건축물의 외부에서부터 내부의 천정과 벽면 등을 보면 연화문과 진언문 등이 대부분을 이룬다. 이들 문양들은 성스런 공간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며, 성역공간과 외계를 구분 짓기 위해서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특히 단청 중에 진언종자로된 문양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기원과 결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만다라의 구조와 형식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만다라는 입체공간을 평면화하여 밀교의 행법에 활용한다. 이 때 만다라의 구조 중에서 가장 바깥 부분은 일반적으로 이중이나 삼중의 원형구조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그 최외원은 타오르는 불꽃을 도상화한 화염의 원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악인이나 독충,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번뇌 등을 차단한다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다. 그 내측에는 금강저를 가늘고 길게 일열로 연결한 금강저의 원륜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금강저는 어떠한 것도 깨서 부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며, 외측의 틈새를 빠져 나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통하여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금강저는 내부의 성스러운 성질을 지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외부의 속된 것을 차단하는 결계인 것이다. 결계는 만다라에 한정되지 않고 어느 한 지역을 수행의 도량으로 정할 때에도 이루어진다. 즉 어떤 지점에 결계석 등을 두어서 그 곳이 별개의 세계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치 전통사찰의 입구에 서 있는 "여기서부터 말에서 내리라"는 표석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표석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경내라는 성역공간을 나타내듯이 만다라의 경우도 공간적으로 외부세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성역공간을 나타내는 결계선을 설정한다. 그러나 기후가 온난한 관계로 인도와 같이 독충이나 독사가 많지 않은 동북아시아지역에서는 처음부터 엄격한 결계에 대한 관념이 희박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불화나 사원의 건축에서 결계개념을 도입한 예를 흔히 발견할 수 없지만 불화의 테두리를 진언으로 장엄하고, 건축물의 단청에서 진언종자로 장엄함으로써 결계공간을 나타내려한 흔적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지사 성보박물관 소장의 십육나한탱화의 전면 상단에는 오른쪽부터 입실지진언인 아바라하카, 비밀실지진언인 암밤람함캄, 출실지진언인 아라파차나가 쓰여 있고, 탱화의 뒷면에 쓰인 진언은 준제진언인 옴차레추레춘디스바하, 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파드메훔, 정법계진언인 옴람이 쓰여 있다. 이것은 진언을 통하여 나타낸 불화의 전방과 후방 결계법이다. 그리고 조선 세조의 시주로 건립된 아산 광덕사 경내의 명부전은 다양한 진언종자로 건축물을 감싸고 있다. 외부 단청사이에는 양측면에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파드메훔'이 쓰여 있고, 전면과 후면에는 정확한 내용을 판독하기 어려우나 만자 사이에 '카, 바, 야, 마, 삼, 훔'으로 보이는 종자진언이 쓰여 있다. 이것은 일종의 도량의 진언결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김용사 후불탱화의 진언결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건축물과 불화에 활용된 진언결계는 다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