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벚꽃과 삶은 계란

편집부   
입력 : 2009-04-17  | 수정 : 2009-04-17
+ -

부모님도 뵙고 만개한 벚꽃도 볼 겸해서 주말에 경주를 갔다 왔다. 절정이라 기대하고 왔건만 벚꽃은 벌써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반월성과 안압지를 산책했다. 몇 달 사이 어머니의 허리는 더 굽어졌고, 이젠 다리가 아파 많이 걸을 수 없다면서 조금 걷고는 쉬기를 반복했다. 마음 속의 어머니는 늙지도 않고 항상 젊고 고운 옛모습 그대로인데 언제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버렸는지 참으로 세월이 야속했다.

건강을 염려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야야, 칠십이 넘으면 산에 누웠으나 집에 누웠으나 같단다. 그만큼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말이제" 하신다.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슬프게 들려 얼른 "요즈음 팔십, 구십은 보통인데, 백수 하셔야지요" 했더니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신다.

"난 알맞게 살다가 갈란다. 김수환 추기경처럼 나도 미리 유언을 해놓는다. 산소호흡기니 그런 거 꼽지마라. 빨리 몸 바꾸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좋지."

우리는 커다란 벚나무 아래 앉아서 음료수를 마셨다. 그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는데 만개한 벚꽃은 기다렸다는 듯이 흰 눈처럼 떨어져 내렸다. 눈송이보다 더 가벼운 꽃잎은 창공을 휘휘 맴돌다 대지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낙화를 본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인 줄 몰랐다.

다음 날 서울로 올라오는 나에게 어머니는 오랫동안 차를 타면 배고프다면서 금방 삶은 계란과 우려 낸 찻물을 내밀었다. 예전 같았으면 촌스럽게 삶은 계란을 어떻게 먹느냐면서 두고 왔을텐데, 이번엔 말없이 받아서 챙겼다. 부모님은 하룻밤을 자고 훌쩍 떠나는 딸이 못내 아쉬워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따끈따끈한 계란을 꺼내어서 어머니의 품인양 가슴에 안아 보았다. 이제야 철이 드나 보다. 부모님과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데….

문윤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