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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기명칼럼 수미산정(511호)

편집부   
입력 : 2009-03-31  | 수정 : 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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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三苦) 해탈의 종단이 되려면

병고, 가난고, 불화고는 진각종단이 해탈의 과제로 삼는 세가지 고통이다. 종단을 입교개종하신 회당 대종사께서는 일체중생의 삼고해탈을 염원에 두고 정진하셨으며, 그 실행의 한 방편으로 진각종문을 개종하셨다. 따라서 삼고해탈의 기준은 진각종 모든 인사의 기준이며, 교화스승의 임용 잣대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인간의 근본고통, 사고(四苦)와 팔고(八苦)를 이 시대의 의미로 함축한 것이 삼고이다. 병고와 가난고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으로 그 인과의 원인은 오직 자신에게 있다. 살생의 업고가 지중하다면 병고에 시달릴 것이요, 물욕에 어두워 자비보시를 즐기지 않고 인색한 마음으로 살았다면 가난고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고통인 불화고는 상대자가 있는 고통이다. 고통 중의 가장 ‘핵’이 바로 이 불화고의 고통이다. 병고, 가난고가 원시적인 고통이라면 불화고야말로 이 시대 중생의 가장 대표적 고통인 것이다. 자신만을 위해 수행하는 출가자면 모르되 생활불교, 실천불교의 종지를 지닌 종단이라면 화두처럼 붙들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과제가 불화고인 것이다.

불화고를 해탈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반드시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있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화고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기 때문에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종조 회당 대종사께서는 그 해법 또한 명쾌하게 제시하셨다. ‘상대자의 저 허물은 바로 내 허물의 그림자라’는 가르침이다. 이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불화고의 인연은 결코 끊기 어렵다.  

병고, 가난고, 불화고를 해탈한 스승인가. 적어도 숙세의 인연으로 중생교화에 투신한 성직자라면 이 기준에 의한 자기검열이 철저해야 한다. 이 세가지 중 어느 한 고통이라도 해탈의 경지가 미흡하다면 ‘소인은 이양에 무너지는’ 그 자리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만일 자기 검열이 부족한 사람이 이양의 자리에 나서려 한다면 세 가지 고통의 순서대로 해탈의 정도를 가늠해 봐야하며 그 판별기준은 법신불이 설하는 당체법문을 살피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