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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입술을 속여라

편집부   
입력 : 2008-10-01  | 수정 : 200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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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 속에는 가을의 냄새와 색깔로 가득 차있다. 우리는 구월이 한참 지나서야 가을이 오는 기미를 감지했었는데, 대지의 식물은 8월이 끝나자 벌써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여름 내내 햇볕과 대지의 기운을 자양분으로 해서 잘 자라주던 상추, 깻잎, 고추 등이 윤기를 잃는가 싶더니 더 이상의 번식과 생산을 중지했다.

여름 내내 텃밭에서 키운 상추, 깻잎, 호박잎 등을 밥상에 올렸는데, 이젠 무엇으로 밥상을 차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싶다는 둥 반찬투정이라도 할라치면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무공해 야채임을 강조하여 입막음을 하였다.

아이들이 부드럽고도 달콤한 음식을 찾을 때면 그러한 것들이 먹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몸에는 그닥 좋지 않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건강식에 관한 이론을 가만히 들어보면 ‘고기를 비롯한 부드러운 음식보다는 야채와 같은 거친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정약용선생은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속이고 동업자를 속이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자기의 입과 입술을 속이는 것은 괜찮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시대가 바뀌어 음식에 대한 개념이 주림을 면하기 위해 먹는다기보다는, 오감(五感)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음식을 즐긴다는 쪽으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그래도 건강을 생각한다면 먹거리의 권한을 전적으로 입과 입술에게 맡겼던 것을 이제는 위장을 비롯한 오장육부에게로 내어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정약용선생의 말을 조금 바꾸어서 “부드럽고 달콤한 음식으로 입과 입술만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거칠고 딱딱한 음식으로 위장을 비롯하여 몸 전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유익한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어야겠다.

문윤정/작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