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일상에서의 안단테 칸타빌레

편집부   
입력 : 2008-03-12  | 수정 : 2008-03-12
+ -

차이코프스키의 현악4중주 제1번 D장조 2악장은 ‘안단테 칸타빌레’라 불리며 독립적으로 연주되어 수많은 사랑을 받아온 명곡이다. 슬라브민족의 러시아적 우수와 서정이 가득한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공연장에서 연주를 듣자마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로 더욱 유명해 졌다.

안단테 칸타빌레는 ‘느리게… 천천히 노래하듯이’ 연주하라는 뜻을 지닌 음악용어로 연주자와 청자 간의 긴장을 이완시키면서 음악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 한 편을 전송하는데 불과 2, 3초 밖에 걸리지 않는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천천히 노래하듯’ 살라고, 조금 느리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힐난 섞인 반응을 보이거나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도 시원치 않은데 인생에서 ‘안단테 칸타빌레’는 사치라고 할 사람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느림이 주는 소중함을 간과한 억지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의 ‘느림의 철학’에는 느림을 인간이 수동적으로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에 쫓겨 다니지 않는 지혜와 능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1999년 이탈리아의 소도시 그렌베 인 키안티가 선언한 ‘슬로우 시티’는 쌍소가 역설한 느림에 대한 명확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 도시의 중심가에는 차가 다닐 수 없으며 패스트푸드 대신 자체 생산한 식료품과 재생가능 에너지만으로 주민들은 천천히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천천히 살면 행복하다는 것에 동조하여 이탈리아의 다른 42개 도시도 ‘슬로우 시티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유럽을 넘어 아시아에도 점차 참여 도시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인구 5만 이하의 소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슬로우 시티운동’을 대도시에서 실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하지만, 개개인의 삶에서는 충분히 그 의미가 상통하는 ‘안단테 칸타빌레’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시대의 요구가 현대인들의 사고를 앞서나간다고 해서 결코 흔들릴 필요가 없다. 비록 우리가 ‘슬로우 시티’에 살지 않는다 해도 천천히, 노래하듯 사는 개인의 삶이 오히려 시대의 화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