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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펼쳐보는 희망 통장

편집부   
입력 : 2007-12-17  | 수정 : 200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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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또 빼앗아 간다. 시간은 또한 그 색채가 다양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평한 것이 있다면 새해 아침에 받는 ‘희망’이라는 마음의 통장일 것이다. 그 통장에는 이런 말도 쓰여져 있다.

“이 통장의 매수는 365일이다. 이 날짜들을 밑천삼아 좋은 일들을 많이 벌이고 또 가득가득 채워라.”

지난 정초 나 역시 이 통장을 받았고 그때 나는 이런 작심을 했다. ‘그래, 날마다 좋은 일을 채워서 연말에는 웃는 부자가 되자.’ 지금 그 연말이 되었다. 통장을 점검해보니 채워진 것이 없다. 넉넉하게 찾겠다던 웃음은 공수표로 남아 있다. 달과 날짜, 주일의 행간까지 샅샅이 돌아보아도 거저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마음이 헛헛해서 거리로 나갔다. 작은 웃음거리라도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으나 눈에 띄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뿐이다. 쓰레기 더미 옆에서 젖은 신문을 고르거나 빈병을 찾는 저 할머니, 할머니의 손등으로는 낡은 내복이 비죽이 밀려나와 있다. 십년도 더 입었을 법한 그 내의는 어디다 간수하셨다가 이 겨울 다시 또 찾아 입으셨는가. 새 내의 한벌 사다줄 자식은 없는가. 

소식란에 숨어 있던 슬픈 사연들까지 한꺼번에 떠오르며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배추를 훔쳤다고 야단맞은 소년가장, 오늘도 거리 잠을 찾아 방황하는 등 시린 노숙자들, 지난 번 시위 때 감옥으로 간 노동자들, 남편을 감옥에 보내놓고 날마다 한숨을 쉬고 있을 아내들, 엄마가 가출한 서러운 저 아이들…. 그들의 희망 통장에는 무엇이 저축되었는가. 가난과 슬픔과 불행, 그런 것들 뿐인가.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또 하나의 새해가 저만치 오고 있었고 나는 그 새해에게 당부했다. 희망은 너무 막연합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는 그런 평등을 주소서.

윤정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