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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가 ‘너무’ 많이 쓰이는 세상

편집부   
입력 : 2007-11-05  | 수정 : 200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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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통계결과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너무’가 아닐까 싶다.

특히 TV뉴스 중에 여름철 해수욕객이나 가을철 단풍행락객들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면 “물이 너무 맑고 날씨도 너무 좋고요, 온 가족이 다 와서 피서하니까 너무 너무 좋아요”하는 식으로 ‘너무’ 투성이라서 듣는 사람이 ‘너무’ 어지러울 정도다.(‘너무’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로는 몹시, 썩, 매우, 참으로, 대단히, 굉장히 등을 들 수 있다.)

‘너무’란 말의 뜻은 ‘한계가 정도에 지나게’ 또는 ‘분에 넘게’이다.(이희승 감수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그렇다면 굳이 과유불급(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이란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매사가 ‘너무한’ 상태는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너무’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너무’가 ‘너무’ 많이 쓰이는 우리 사회현상에 대해서 나는 ‘너무’ 걱정하고 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나 기업가, 학자, 교육자, 기술자 등은 특히 자기 맡은 일을 하는데 있어 ‘너무’ 꼼꼼하고 자상하거나 그 정도를 넘어 치열하고 집요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해수욕장에서 기분이 ‘너무’ 좋으면 물에 빠질 가능성이 ‘너무’ 높아질 염려가 있다. 또한 산에서 단풍경치에 ‘너무’ 취하면 자칫 굴러 떨어질까 ‘너무’ 우려된다.

하기야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애용하는 ‘너무’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사실 ‘너무한’ 일도 ‘너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이겨보겠다고 나선 여러 후보들의 ‘너무나’ 심하게 부풀려진 공약들을 보아도 그렇다. 아마 역대 대통령들이 공약한 것이 다 지켜졌다면 우리나라의 현재 국력은 미국을 훨씬 능가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돈 잘 버는 사람은 ‘너무’ 많이 벌어들이고, 반면에 빈곤층의 살림은 ‘너무’ 어려워만 간다. 어디 그 뿐인가? 일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은데 각 직종 간의 임금격차도 ‘너무’ 심해졌다. 공무원 정원도 ‘너무’ 많이 늘었다하고, 간혹 드러나는 뇌물의 액수도 ‘너무’ 큰 것 같다. 또 초?중등학생 나눌 것 없이 과외공부가 ‘너무’ 많은 것 같아 보기에도 ‘너무’ 안쓰럽다. 그토록 열심히 과외공부를 해도 대학졸업 후에 취직 못하는 청년들도 ‘너무’ 많다.

우리 사회의 형편이 이렇다 할지라도 대화 중에 ‘너무 너무’를 남발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너무나’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줏대가 없어 보여 이 또한 ‘너무’ 답답하다. ‘너무한’ 세상에서 ‘너무’만 입에 달고 살면 우리 주변이 더욱 ‘너무’해질 것 밖에 더 있겠는가?

어쨌거나 앞으로도 나는 일상대화에서 ‘너무’를 ‘너무’ 할 정도로 쓰지 않고 버티어 볼 작정이다.

박홍국/위덕대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