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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다운 인연

편집부   
입력 : 2007-09-17  | 수정 : 20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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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폭풍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50년대 중반, 아내와 어린 남매를 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틈틈이 작곡을 했으며 개인적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가장이자 음악가였던 그는 자신의 창작곡으로 서울시에서 수상하는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음악의 선진국인 유럽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가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둘 다 버리지 않는 방법을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아무리 힘들어도 최대한 빨리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가족과 재회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고 파리로 떠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식들과 가녀린 아내의 슬픔을 감춘 당당한 웃음을 뒤로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외로움과 그리움, 너무나 다른 문화적 감성을 이고지면서 묵묵히 자신이 해야할 목적인 음악에 집중하였다. 그의 놀라운 재능과 창조적인 음악어법은 어느새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고 성공을 이루었지만 고국에 남은 가족들은 가장의 빈자리를 지키며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음악적인 위업을 이룬 작곡가 윤이상이다.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고향에 대한 향수를, 조국에 대한 가슴 뛰는 애정을 그는 음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견고한 아성을 지닌 위대한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세계는 이 위대한 음악가를 얻지 못할 뻔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윤이상을 견디게 해준 부인 이수자 여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만일 그녀가 힘들다고 어서 돌아오라는 편지를 한통 썼다면 윤이상은 모든 걸 버리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을 공산이 크다. 윤이상은 위대한 작곡가이기 전에 뜨거운 심장을 지닌 인간이고 남편이며 자상한 아버지였기에.

윤이상과 이수자는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이를 측정하기 어려운 애정을 쌓았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외로워도 따스한 손길과도 같은 편지로 격려하고 위로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윤이상과 이수자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김정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