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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 감정계좌

편집부   
입력 : 2007-07-30  | 수정 : 20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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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스티븐 코비는 '감정계좌'라는 은유를 사용했다. 사람들 사이의 감정은 마치 은행계좌와 같아서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평소에 좋은 감정을 넉넉히 저축해놓은 사이라면 어쩌다 언짢은 일이 발생해도 평소의 감정잔고를 써서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반면 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사이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감정의 파산이 일어나고 만다.

요즘 들어 코비의 '감정계좌'를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별것 아닌 계기로 애써 쌓아놓은 잔고를 홀랑 까먹은 계좌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꽤 노력했는데도 잔고가 쌓이지 않아 억울한 계좌도 있다. 물론 써도 써도 고갈되지 않는 화수분 같은 사랑의 계좌, 자비의 계좌 덕분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만, 본의든 아니든 '깡통'으로 변한 계좌들을 떠올리는 일은 씁쓸하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오기도 하고,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말보다 해서 후회하는 말이 훨씬 많다'는 톨스토이의 잠언이 새삼스러워지기도 한다.

사실 '감정계좌'는 비유일 뿐이다. 셈하기 어려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대차대조의 형식으로 견주어 볼 수도 있다는 착상에 불과하다. 그 밑바탕에는 '주고받기(give and take)'라는 이악스러운 서양식 인간관계 인식이 깔려 있다. '주는 거 없이 이쁜 사람'이라든가 '전생의 원수'라는 식의 우리네 정서와는 부합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대생활에서 필수화한 은행계좌를 활용해서 자기반성을 촉구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럴듯한 비유임에 틀림없다.

덥고 축축하고 짜증나는 여름이다. 오행으로 여름은 불(火)에 해당한다. 불은 너무 멀리해도, 너무 가까이해도 위험하다. 불기운을 잘 다스려내지 못하고 휘둘리면 좋은 관계일지라도 순식간에 감정계좌가 바싹 마른 저수지 바닥이 될지 모른다.

불볕더위를 잠시 피해 떠난 피서지에서 '깡통계좌', '휴면계좌'를 잘 정리해서 이를 복구할 방도와 마음가짐을 추슬러 돌아온다면 더없이 알찬 휴가일 터이다.

양훈도/경인일보 주말판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