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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 신라 때 제작"

김보배 기자   
입력 : 2007-03-28  | 수정 : 200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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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의 제작연대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의 일부분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불국사 석가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과 함께 발견된 묵서지편을 부분적으로 판독해내고, 3월 9일 "110여 쪽에 이르는 묵서지편은 보협인다라니경, 1024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 1038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 보시명공중승소명기(布施名公衆僧小名記) 등 최소 4종으로 구성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공개된 내용을 가지고 한 언론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의 인쇄물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함에 따라 더욱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신라사학회는 3월 24일 오후 2시 서울 마포 경인문화사 학술세미나실에서 제59차 학술발표회를 열고 묵서지편의 해독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석가탑 안치연대를 검토했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는 '석가탑(무구정광탑) 중수기에 대한 초보적 검토'라는 논문을 통해 공개된 중수기 원본을 해독하고 "중수기의 전후 문맥상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시대에 제작되어 석가탑에 안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승준 연구원이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를 해독한 내용에 따르면 석가탑은 신라 경덕왕 1년(741)에 개창해 혜공왕대(765∼780)에 완성됐으며, 285년이 지난 뒤 중수했다. 이후 현종 15년(1024) 사리함과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다시 안장했다는 것이다. 김태식 기자는 "중수기를 통해 석가탑은 고려초기에는 무구정광탑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창건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라시대 당대의 명칭이었을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무구정광탑이란 명칭은 이 탑을 세울 수 있도록 뒷받침한 경전이 무구정광다라니경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또 "공양물 목록 중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두 번 적힌 것을 볼 때 현재의 두루마리본 외에 죽간본(竹簡本) 다라니경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중수기 첫 대목에 '월함산 유가업(瑜伽業)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라고 나옴으로써 적어도 탑이 중수된 고려초기에는 불국사가 유가종을 기반으로 하는 사찰이었음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김보배 기자 84bebe@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