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출판

(책)가보고 싶은 그 절…

김수정 기자   
입력 : 2006-04-27  | 수정 : 2006-04-27
+ -
(자연과 사람 사이 절·윤제학·명상·13500원)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돌은 여럿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낡은 배낭이나 운동화가, 또 어떤 이들에게는 낡은 배낭이나 운동화가, 또 어떤 이들에게는 한편의 시가 바로 그것일 수 있다. 내게는 절집이 그것이다." 불교계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로 근무했던 윤제학 동화작가가 자연의 미학을 담은 책 '자연과 사람 사이 절'을 펴냈다. 지금까지 출간된 대부분의 사찰 관련 서적들이 문화유적 답사나 여행안내서, 사찰의 역사나 문화재에 대한 해설서, 템플스테이에 관한 안내서에 불과했다면, 이 책은 그것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난다. 저자는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 소통으로서의 '절'의 의미를 부여해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절에 담긴 자연주의 미학 등을 초점에 맞췄고, 빼어난 문체로 이를 고급스럽게 풀어냈다. 전문용어를 배제하면서도 기본적인 사찰의 역사나 불교교리가 글에 녹아들어 단순한 기행서적에서 머물지 않는 문학의 맛을 표현해냈다. 일반화된 내용이나 상투적 표현도 허용하지 않았는데 "보는 만큼 안다"고 서문에서 밝혔듯, 사전 정보를 뒤지지 않고 절집에 머물렀다는 저자의 태도는 사뭇 호방하다.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속에 길이 열리는 절이 있습니다. 이른 봄, 처연히 붉은 가슴을 열어 보이는 대흥사 동백 숲길. 소낙비 내리는 여름날, 우산을 받지 않고 걷고 싶은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 이슥한 가을, 차마 밟기가 망설여지는 부석사의 은행나무 길. 눈 내리는 겨울, 마냥 하늘을 보며 걷고픈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 이렇듯 산사는 길보다 먼저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금칠한 부처를 찾을 게 아니라 마음 속 부처를 먼저 찾으라는 가르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멸보궁' 가는 길. 법흥사의 소나무 숲길도 내게는 '내 마음 속 길'입니다."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법흥사에 간 저자는 "삼라만상이 다 부처의 몸"이기 때문에 그곳의 소나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의 사리라면서 절 마당을 오가는 다람쥐와 청설모, 구르는 돌멩이, 아무렇게나 피어난 들풀을 비롯한 모든 것이 부처의 몸이라고 말한다. 자연-하늘과 땅, 바다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정성스럽고 온화하며, 자연과 더불어 자리한 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저자는 자연을 닮은 집으로 장곡사, 고운사, 미황사, 부석사, 백양사를 들고 자연에 담긴 집으로 향일암, 망해사, 대흥사, 신륵사, 청량사를 들며 자연을 담은 집으로 운주사, 선운사, 화암사, 무량사, 법흥사를 들고 부처와 사람이 만나는 집으로 은해사, 봉정사, 내소사, 법화사, 수종사를 들고 있다. 20개의 사찰을 소개한 저자는 아직도 글로 풀어내고픈 절집이 많다면서 "절은 내게 자연의 품이기 때문이 좋고, 자연과 부처는 같은 말이다"라고 털어놓는다. '집'이라 매듭지은 까닭도 이렇듯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 즉 따뜻한 품이 느껴지는 것 등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서정성 짙은 저자의 글 솜씨만큼이나 정정현 사진작가의 사진들도 서정적이다. 정형화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담백하면서도 고즈넉한 느낌을 담아내 글과 사진이 하나를 이룬다. 현란함을 배제하고 흑백 사진 위주로 담은 각 절의 모습은 "그 절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킬 만큼 고혹적이며 특히 사진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는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산문(山門). 절의 어귀를 일컫는 말이다. 절로 가는 길은 산으로 가는 길이요, 산으로 가는 길은 절로 가는 길이다. 바위나 구름처럼 산의 일부로 존재하는 절은 그곳에 발길을 한 사람들이 절로 자연의 일부가 되게 한다. 절은 산의 지음(知音)이며, 산에 절이 있어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풍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즉, 절은 자연과 사람 사이에 있고, '교감'할 수 있는 관계이며 거리다. "어느 사찰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까?" 라고 묻자 저자는 오랜 고민 끝에 "만수산 무량사에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낮게 읊조렸다. 근심이 눈처럼 쌓이는 날이 길어지거든 무량사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가라는 글귀에서 무량사의 주불전인 극락전이 눈에 보일 듯하다. 김수정 기자 puritymay@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