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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426호)

지현 주필   
입력 : 2005-05-14  | 수정 : 200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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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축제를 한국의 대표축제로 불기 2549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가 전국적으로 성대히 펼쳐지고 있다.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는 탓인지, 올해의 봉축행사는 예년에 비해 더욱 화려하고 장엄하게 전개되는 느낌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구, 부산, 대전 등 주요 대도시에서 각 지역 불교연합단체가 주관하는 제등행진이 펼쳐졌고, 봉축 당일을 전후하여 각 심인당 등 도량에서는 연등 점등불사 및 부대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의 봉축행사는 불자들만의 잔치가 아닌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 축제이다. 등 공양뿐 아니라, 각종 장엄물을 앞세워 범 국민적으로 부처님 오심을 봉축했던 팔관회, 연등회 행사가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왔던 것이다. 특히 올해의 행사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늘어 바야흐로 연등축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문화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불사가 너무 형식에 치우쳐 본래의 의미를 잃고 외연만 확대되는 것은 문제이겠지만, 문화민족, 평화민족임을 자처하면서도 전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변변한 고유 축제가 없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연등축제만큼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러질 수 있는 매력 있는 문화상품도 드물 것이다.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행사로 치우칠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나 타 종교인도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 컨텐츠 개발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지혜와 아량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고, 안정적인 재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연등축제가 불교와 불자들의 주머니 돈이 아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식적인 물적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올해의 봉축행사에서 다양한 전통등을 개발하여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불교라는 특정종교 상품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단절된 전통을 복원하고, 국가적 문화상품을 개발한 것임을 눈 여겨 보아야할 대목이다. 더불어 봉축행사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불자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우리 사회의 불우한 이웃과 그늘진 구석들이다. 갈수록 화려해지는 장엄물과 행사가 끝나면 창고로 들어가는 형형색색의 연등은 중생구제를 위해 이 땅에 대의왕으로 나툰 부처님 강생의 의미를 혼돈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국민축제로의 위상은 중생의 갈증과 고통을 함께 풀어 줄 때 비로소 자리매김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문두루비법'을 복원하자 밀교가 호국불교의 연원을 지닌 것은 밀교의 전래 과정이 국가를 진호하기 위한 시대적 요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등 사료에 의하면 신라의 선덕여왕 재위 시 명랑법사가 당병 50만 대군을 물리치기 위해 황급히 사천왕사를 창건하고 '문두루비법'을 행한 데서 한국밀교의 발원은 시작되고 있다. 현실적인 국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누란의 위기에서, 불력으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단법석'을 설시하고 밀교의 비법과 원력으로 국가와 백성을 지켜낸 것이다. 한국밀교의 중흥종단임을 자임하는 진각종단은 입교개종이래 진호국가불사를 주요 신행이념으로 삼아왔다. 국가의 재난이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전국적인 심인당이 하나가 되어 강도를 올리고 국가진호를 위해 기도해 왔던 것이다. 진각종단이 일체의 상을 배제했으면서도 전국의 모든 심인당에 '진호국가불사'라는 주련을 똑같이 내건 것도 이런 연유이다. 그러나 진호국가 강도불사는 전통적인 '문두루비법'과는 의미면에서는 유사하지만 형식차원에서는 거리가 있는 진각종 고유의 특별한 신행의 한 형태이기에, 여기서 범국가적인 불교문화의 계승 차원에서 '문두루비법'의 재현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선 의미적인 면에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인의 결집형태는 필요한 것이고, 그 형태를 전통에서 되찾아 복원할 때 국민적인 관심과 행사의 의미는 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반도를 또다시 전쟁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북핵문제와 독도문제 등 국가적 현안에 대해 한국밀교 중흥종단인 진각종의 '문두루비법'을 통한 국가진호의 종교적 역할이 요구된다. 창종 60주년을 맞는 진각종에서 개종의 근본 연원이기도 했던 '문두루비법'을 재현한다면 그것은 창조적 전통의 계승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참 종교의 소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