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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함이 삼밀이라.

밀교신문   
입력 :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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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님의 <실행론> ‘당체법문편에서 ()은 색()을 이()로 하여 일체 세간 현상대로 불()의 법()과 일치하게 체득(體得)함이 교리(敎理)이니 체험(體驗)이 곧 법문(法門)이요, 사실(事實)이 곧 경전(經典)이라라고 말씀하셨다. 밀교는 진리와 현실을 둘로 나누어서 보지 않고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일을 바로 진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체험하는 것이 바로 법신부처님의 법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종조님은 옛날 성인들의 발자취를 문자의 경이라고 보고, 참 경은 내가 지금 여기서 느끼고 실천해서 깨닫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체험을 어떻게 하여야 바르게 하는 것일까? <진각교전> ‘삼밀은 전인적인 수행에서는 몸과 입과 뜻을 가지고 수행하여 갈 적에 그 진리를 지성이나 평면(平面)으로 사유(思惟)를 하지 않고 전인적(全人的)과 입체(立體)로서 긍정(肯定)함이 삼밀(三密)이라라고 나와 있다. 진리를 오직 마음[유심(唯心)]으로만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 양면으로 이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득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어떻게 법문으로 볼 수 있을까? 먼저 거룩한 깨달음을 논하기에 앞서 보통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주로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 특히 요즘은 부()가 바로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목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모두 비슷한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소수의 성공한 사람도 만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더 성공해야 한다는 다수 또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도 않지만, 뜻대로 된다 한들 끝없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고 모두 다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끝없이 바라고 원하는 것보다 잘 되든 못 되든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행복하다는 말이다. 즉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필요한 것이다.

 

로망스 드빌레르는 <모든 삶은 흐른다>에서 살다 보면 받기도 하고, 거부도 당하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삶이란 물러나고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것이다. 고난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고통과 역경을 피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파도처럼 살면 된다. 물러나고 밀려옴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모든 것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자. 그저 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받아들임긍정하는 것이다, 나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고 말이다. 그 기준의 바탕은 인과이다. 내가 만든 일이니 모든 일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즉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인생에서 고난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정면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대부분의 일은 즉시 해결되고 더 좋아진다. 고통을 통하여 나의 몸과 마음은 더욱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행복을 위해서도 모든 것을 나의 인과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의 열쇠가 된다. 또한 깨달음의 삶도 다르지 않다. 긍정하는 것 자체가 삼밀이라는 것이다. 중생이 하는 삼업(三業)이 아니라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의 첫걸음이 긍정이라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나의 종교는 친절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매 순간 모든 사람을 부처로 보고 부처님처럼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친절한 상태는 환한 미소와 함께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이는 어려운 것이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 속에 우리의 선심(善心)을 좌절시키는 사건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들려오는 뉴스마다 인간으로서 저럴 수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허물이 아니다. 보이고 들리고 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법문인 것이다. 나의 인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욕하고 말 일이 아니라, 부처가 되는 길로 가는 법문으로 본다면 나와 모두 관련이 많든 적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종조님은 상대자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고 하셨다. 우리가 현실에서 부정할 것들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긍정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승수지 전수/항수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