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밀교신문   
입력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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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원 이전과 교화의 계승

3. 종행정의 변혁과 교법의 체계화

1) 종행정의 변혁과 저변확대

 

(1) 종행정의 변혁

원정각 총인 임기가 만료돼 6대 총인 원정각을 선임해 추대했다(44,12.27). 종립대학 설립을 위한 임시종의회에서 종립대학(가칭 위덕(威德)대학교)을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종유재산과 소요자금 출연 대상을 결의했다(45,3.20). 대학설립 예정으로 매입한 강동면 임야 3필지를 대학설립 부지로 회당학원에 무상 출연하고 소요자금 출연을 위해 정정심인당 인접 용지를 무상출연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심인당을 매각하여 대학을 세울 수는 없다는 이유로 스승과 신교도가 대학설립을 심하게 반대하는 상황도 있었다. 종립유치원 설립 및 운영내규를 결의하고 중국 포교사 답사단을 34인으로 하여 답사하기로 정했다.

 

추기강공 정기종의회는 종립대학 설립자금으로 5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복지시설인 기로원 건설과 의성 임야의 묘지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종무원의 근무 안정을 위해서 종무원 자녀 장학금 지급을 결의했다(45,10.22).

7대 종의회의 임기가 끝나서 스승총회에서 8대 종의원 선거해 소암 등 37인을 선출했다(46,4.22). 정기종의회를 열어 의장 경혜, 부의장 도흔·대안화를 선출하고 제8대 종의회를 구성했다.

 

(2) 종행정의 저변확대

교화스승의 복지는 종행정에서 매우 중요했다. 교화스승이 퇴임 후 안락한 수행생활을 하도록 기로원과 수로원을 설치 운영했다. 통리원 경내의 기로원의 시설이 취약해 기로원을 대구로 이전하기로 했다(39,7.30). 대구 신익심인당 인접의 회당학원 공장부지 2,048평을 매입해 기로원 건물 신축을 착공했다(40,3.27). 교화 일선에서 퇴임한 원로스승의 휴식처와 수행정진의 법력을 펼칠 기로원 건물은 연건평 400평의 한식과 양식의 현대식 건물로서 침실, 식당, 관리실, 휴게실을 갖추었다. 또한 부속 유치원을 함께 설립해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했다. 기로원 건물이 완공되어 스승과 신교도 관계기관장이 참석해 헌공불사를 올렸다(40,9.30). 또한 스승 후생복지와 신교도와 일반대중의 문화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진각회관을 건립하기로 했다(42,12.24). 대봉동 옛 건설부 부지에 10층 규모의 건물을 지어 대구관구청 포교와 불교발전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진각회관은 건립과정에 불협화음이 생겨서 건립이 미뤄졌다. 스승의 복지와 더불어 신교도의 복지사업으로 경북 의성에 임야 44만 평을 매입하기로 하고(44,1.18) 그곳에 묘지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45,10.22). 동시에 신교도의 복지시설로서 교화 초기의 양수원의 뜻을 계승하여 양로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종단의 교화발전에 따라 통리원의 조직도 확대했다. 특히 교화시설의 건설과 관리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건설부와 공무국을 신설하기로 했다. 또한 사회의 다변화와 보도매체의 증가에 맞춰 종단의 홍보 업무를 강화하고 창구의 단일화를 위해 홍교부에 문화국을 증설했다(44,2.27). 그리고 스승양성과 종무행정의 체계를 균형 있게 세우기 위해 종무원을 교직희망자와 일반 종무원으로 구별했다. 교직자는 사무와 교육을 적절하게 수행하고 일반종무원은 사무만 담당하며 정년을 60세로 했다. 종무원 제도는 다시 교직희망 종무원은 수습시무와 일반직 종무원으로 나누었다. 일반직 종무원은 일정한 기간 후에 수습시무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기존의 일반직 종무원은 전담직 종무원으로 개칭해 사무에 전담하기로 했다(44,4.25). 종무원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종무에 전력하도록 했다(45,10.22).

 

사회환경의 다양화에 따라서 종행정의 전문성이 필요해 종단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교화사업 재산관리 구제사업 등 대사회적 문제에 대해 계획과 운영에 자문할 각계 전문 인사를 위촉하여 종단자문위원회의 구성을 결의하고 관련 종법을 마련하기로 했다(43,10.25). 종행정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진각회관 건립 부지와 서울 강동구 성내동 심인당 설립 부지의 활용방안을 세우면서 정부의 토지종합세 시행에 부딪혔다. 그러나 세금을 내는 경우가 있더라도 신중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종단의 사익도 중요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긴 종조의 정신에 따랐다(44,1.18).

 

종단 집행부는 종단 차원의 달력을 제작해 신교도 및 사회에 배포하여 왔다. 특별히 달력에 종조의 법어를 월별로 넣고 자성일 월초불공 등 7대절과 종단의 행사를 쉽게 알게 하여 신행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제작했다(37,12.1). 종단의 홍보용으로 제작해 오던 교세개요’, ‘진각종요람을 창교 40주년을 맞아 내용을 보완하고 판형을 크게 해 원색 양장으로 발간했다(41,6.14). 종조 당시부터 출판, 인쇄와 관련한 조직으로 지속해 온 해인행을 다시 도서출판사로 성북구청에 등록했다(41,12.30). 종조의 출판인쇄에 대한 관심을 견지하고 종단 출판문화의 활동을 강화했다. 전산산업의 발달에 맞춰 종행정의 전산화 사무자동화를 위해 통리원과 교육원에 컴퓨터 3대를 구입하고(44,4.9) 통리원과 대구관구청에 팩스를 설치했다(44,4.17). 종무행정의 전산화로 업무를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고, 쉽고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가능하게 됐다. 교화의 지속성과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려는 취지에서 연중 실천덕목을 세워 실천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시행 첫해에 은혜 깨우쳐 생명 살리자라는 실천덕목으로 하여 연중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다(45,1.1). 연중 실천운동은 해마다 새로운 실천덕목을 세워 시행하고 연중 캠페인의 기금조성을 위해 여러 모금운동을 계획했다. 조성한 기금은 어린이 및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사용하기로 했다.

 

(3) 종단 성지조성사업

울릉도 종조탄생지 성역화 불사의 1단계가 원만히 마무리되어 다시 2단계 작업에 들어갔다. 성역화 2단계는 오륜탑과 비를 건립하고 환경을 정비하는 작업으로 확정됐다(39,1.31). 성역화 작업은 인접부지를 매입해 경내를 확장하고 통리원장, 교육원장이 현장을 방문해 공사를 시작해다. 성역화 작업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종조탄생지를 종조의 위덕이 금강처럼 누대에 미치고 기리려는 의미를 담아 금강원(金剛園)으로 명명하고 헌공불사 일정을 정했다(39,5.15). 금강원은 또한 금강계만다라 뜻도 품고 있다. 성역화 작업이 완성되어 스승과 신교도, 울릉지역 각 기관장 등 많은 인사가 동참해 오륜탑과 비의 제막식을 거행했다(39,5.29). 종조전 앞뜰에 조성된 종조비의 비문은 종조 일대기를 중심으로 운범이 기초해 수정 보완했다. 오륜탑의 탑신에는 종조의 법구를 음각한 금재판과 종조의 증오진언(證悟眞言·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금재 원구에 조각하여 봉안했다. 종조의 법구와 증오진언은 종조의 정신사리(精神舍利)로서 법계탑에서 영원히 안주하는 의미를 담아 봉안하였다. 금강원 2단계 불사가 완성되어 금강원이 신행의 중심 귀의처가 되고 한편 울릉도의 중요 여행지가 됐다. 성역화 불사는 계속해 가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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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종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