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밀교신문   
입력 :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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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원 이전과 교화의 계승

2. 종행정의 혼란과 교화의 지속

5) 교육활동과 교육사업

 

(1) 연수교육의 시작

부진한 자성학교 교화를 활성화하려는 계획으로 전국 심인당의 스승에게 자성학교 활성화를 독려하고 오르간을 보급했다. 그와 동시에 자성학교 교사의 교리이해와 신심을 심화하고 교사 간의 정보와 자료 교환을 위해 자성학교 지도교사 연수를 실시했다. 제1기 자성학교 지도교사 연수를 열어 기초교리연수, 유희강습, 공작실습, 서원가 연습, 교사 상호 간의 의견교환 및 자성학교 육성방안에 대한 논의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35,8.18). 중앙교육원 주관으로 처음 실시한 연수교육으로 수료한 교사에게 수료증과 임명장을 수여하고 매년 2회 연수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자성학교 지도교사 1기 연수에 이은 제2기 연수를 통리원 회의실에서 실시해 자성학교 지도교사 연수를 정착시켰다(35,12.23). 자성학교의 교화가 활기를 띠면서 전국청년회 대구지부와 자성학교 지도교사 협의회가 공동 주관하여 대구지역 자성학교 운동회를 실시했다(36,11.14). 

 

자성학생과 신교도가 함께 한 운동회에서 여러 놀이행사와 운동경기를 통하여 신심을 굳게 했다. 이때부터 자성학교 어린이를 자성동이로 불렀다. 자성을 찾는 어린이라는 의미다. 자성학교에 이어 종단이 유치원 설립에 힘을 쏟아 자성학교 지도교사 연수는 종립 유치원 교사 연수를 겸해 실시했다. 유치원 교사가 자성학교 지도교사를 겸임하는 심인당이 늘었기 때문이다. 제4기 자성학교 지도교사 연수를 겸한 제1기 종립 유치원 교사 연수는 ‘진각종의 기본교리’(강복수 박사), ‘삼밀가지의 인격적 실천’(혜정) 등의 법회로 교리이해와 신심을 깊게 했다(37,2.24). 또한 ‘유아원 운영의 실제’(최옥순 새세대시범육아원 원감), ‘종단의 유아원 운영방침’(혜일), ‘불교유치원 교안작성 예시’(백경임), ‘불교의 유아교육원리’(박선영 동국대 교수), ‘불교어린이와 교사’(선우산사학교 장현재) 등의 아동교육전문가와 놀이활동전문가의 강좌로 교양과 지식을 높이게 다. 교사들은 흥미 있는 연수를 통하여 어린이 교육의 교사로서 사명감을 자각할 수 있었다. 

 

장명 통리원장의 독려로 중앙교육원과 홍교부 업무를 겸임하는 경정이 장익 등의 불교 지식인의 도움으로 기획하고 실시한 연수교육이 호응을 얻으면서 종립학교 교사연수로 확대했다. 종립 중고등학교 주임교사의 교리이해와 신심을 증장하고 종단의 학교 운영방침과 상호 친목을 돈독히 하기 위해 4박 5일간 연수회를 실시했다(36,8.9). 종립학교 주임교사의 연수 후에 교직원의 연수를 실시하였다(37,8.9). 교육원에서 4일간 실시한 연수에서 교직원은 교리와 수행법의 이해와 종단의 학교 운영방침을 인지하고 교사 간의 친목을 깊게 했다. 교사와 더불어 간부교사 연수도 실시하여 종립학교의 설립 방침을 인지하고 진각종의 교리와 수행을 실수하는 등 상호친목을 위한 일정을 가졌다(37,8.17). 


(2) 종립유치원의 설립

종단은 초기부터 아동 교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자성학교와 함께 유치원 설립을 계획했다. 종조 재세 시에 유치원 설립이 무산되어 다시 서울(총인원)과 대구(희락심인당)에 유치원 설립을 결의하고 진기28년도 신학기부터 운영하기로 했다(27,3.15). 역시 유치원 설립이 뜻대로 되지 못하여 종립유치원 설립을 다시 결의했다(36,9.21). 우선 제1차로 진기 37년 개원 계획으로 탑주, 방등, 응화, 불승, 희락, 보원, 경전, 옥정, 정정, 홍원 등 10개소와 통리원 등으로 결정했다. 

 

통리원이 성북구청에서 하월곡동에 유아원을 건립하고 위탁 운영을 의뢰하므로 수락했다(36,12.31). 유아원 명칭을 본심(本心)으로 짓고 김영호(혜일)를 원장에 임명했다. 유아교육과 유아포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종립유치원 설립 결의에 따라서 먼저 희락, 보원, 불승, 경전, 홍원, 정정 등 6개 유치원을 개원했다(37,3.14). 동두천 보타심인당의 교화가 어려워서 동두천시에서 새마을유아원 운영을 제의받아서 수탁하고 김영호를 원장에 임명하고 보타 새마을유아원을 개원해(37,4.14) 박혜정이 원장을 대리하여 운영했다. 대전 입실심인당 건물에 대한불교진각종 부설 새마을유아원을 개원했다(37,5.9). 입실심인당 주교 지성이 파동의 결과로 종단에서 물러남에 따라서 교화가 어려워져서 유아원을 설치했다. 


(3) 진선여자중·고등학교 설립 

종단은 학교법인 위덕학사의 명칭이 적절하지 못하여 설립자 종조의 법호를 담아서 회당학원으로 개칭했다(32,4.27). 교장의 임명을 종의회에서 결의하는 내용을 없애고 이사 인원수를 6인에서 9인으로 증원하고 이사의 과반수를 종단의 스승이 맡도록 했다. 

 

학교법인 위덕학사의 이사장을 스승이 맡아 오다 교육전문가인 서주가 위덕학사를 운영하기로 했다(26,3.24). 대구와 함께 서울에도 종립학교를 설립하자는 여론에 따라 원의회에서 서울에 종립여자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종단에서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의했다(30,6.22). 원의회의 결의에 따라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산 1에 대지 9천 평을 매입하여 지하 1층 지상 4층의 교사를 착공했다(30,8.25). 서울시가 강남 개발 계획에 의해 학교부지로 지정한 도곡동 산 1대지는 서주 이사장이 서울시의 협조로 매입했다. 학교의 교사를 건축하는 동안 교명을 진선여자중·고등학교로 짓고 여학교의 교장으로 여성이 적합하다는 취지로 정명지를 교장으로 내정했다(30,10.22). 그러나 정명지가 건강상의 문제로 사의헤 종의회는 심인고등학교 교장 손인수를 교장으로 전보하기로 추천했다(31,1.20). 

 

고등학교 교사가 완공되어 77학년도 신입생 중학교 788명 고등학교 600명 등 1천 388명과 학부모 관계기관장이 참석해 입학식을 거행하고 개교했다(31,3.5). 진선여중·고 개교에 맞춰 학교의 교화와 심학을 전담하는 정교(正校)를 파견했다. 정교는 학교 정사(正師)의 의미로 김무생이 처음 부임했다. 서울지역에 종립학교를 설립하여 청소년

의 교육과 교화의 터전을 마련했다. 고등학교 교사를 완공하고 즉시 중학교 교사의 지상 5층의 건축을 시작했다(31,5.25). 그리고 종단은 학교 건축비 추가보조를 논의했다. 대지 구입비 2억 7천만 원(시가 9억 원), 공사비 3억 원을 지원했으나 추가로 1억 원의 보조를 요청해 4천만 원으로 조정했다(31,5.25). 

 

학교의 운영상 부득이 4천만 원 유상보조로 결정했으나(31,10.28) 학교의 재정상태를 감안하여 무상보조로 결의했다(31,12.22). 중학교 교사가 완공되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하고 원의회에서 손인수를 중학교 교장으로 전보하고 고등학교 교장에 박태화를 추천했다(32,3.21). 손인수가 스스로 중학교로 가고 박태화를 고등학교 교장으로 임명하도록 요청했다. 

 

진선여중·고의 생활실습관이 필요하여 총인원 정사를 개조해 사용하기로 했으나(32,4.27) 결국 통리원 시설을 사용했다. 종립 중고등학교의 종교과목인 심학(心學)의 교재가 필요해 ‘진각교본’을 출간하고, 같은 내용을 신교도나 일반인이 읽도록 ‘불교중흥과 진각교의’라는 제목으로 동시에 출간했다(33,3.20). 

 

진선여중 정교인 김무생이 집필하고 교재편찬위원회의 명으로 출간한 ‘진각교본’은 종조의 사상과 종단의 교리체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담았다. 그리고 처음 입학한 진선여고 학생 600명이 통리원에서 생활실습을 하고(33,12.1), 또한 졸업불사를 올렸다(33,12.13). 이렇게 매년 진선여중·고 학생의 생활실습과 졸업불사를 통리원에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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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종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