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죽(駝酪粥) 이야기

밀교신문   
입력 :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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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癸卯年)의 첫 번째 글은 소소한 듯하나 큰 반전이 있는 음식을 골라보았다. 조리법이 비교적 간단하고 가볍지만 고소하고 하얀빛의 영양이 좋은 ‘타락죽(駝酪粥)’을 선택하였다. ‘타락’은 한자어로 낙타 ‘타(駝)’, 진한 유즙 ‘락(酪)’으로 낙타의 젖을 뜻하나 실제로는 우유(소젖)를 이용하여 만든 음식이다. 우유는 영양적으로 구성이 우수한 완전식품으로 소를 가축으로 길들인 기원전 10,000년~12,000년에 유럽에서 처음 먹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유는 단백질과 유당(락토오즈), 지방, 비타민A, B, D와 각종 무기질(칼슘, 칼륨, 마그네슘, 인 등)이 골고루 들어있다. 송아지에게 유일한 밥이니 영양이 풍부한 것은 당연하리라. 특히 우유의 유당과 비타민 D는 칼슘이 흡수되기 쉽게 해주므로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 여성에게 칼슘 급원으로 매우 훌륭한 식품이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보양을 위해 초조반으로 타락죽이 진상된 이유가 충분하다. 이른 시간부터 국사를 보시던 영조는 새벽 5시경 죽류와 젓국조치, 동치미·나박김치·마른찬·간장·소금·꿀 등으로 간단하게 드셨다고 한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우유를 먹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꽤 오래되었음을 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는 우유(범의 젖)로 식품(유락 乳酪)을 만들어서 왕에게 진상했다고 하였고 <고려사 열전(列傳)>에는 명종(1170~1097) 때 한림학사 이순우가 ‘팔관회에 사용할 약(우유죽)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이 기르는 소를 끌고 와서 우유를 짜내는 일을 폐지’해줄 것을 왕에게 요청하여 승낙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송아지의 성장과 인정이 작용한 결과이고 그 당시에 우유를 특별한 경우에 제법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말 우왕때는 ‘유우소(乳牛所)’라는 국가 상설기관(목장)이 설치되어 관리자가 200여 명이나 되었으며 이곳에서 젖을 짜서 만든 제품을 진상했다고 하니 더욱 그렇구나 싶다. 원나라(몽골)의 영향이 컸던 시기이므로 관련된 조리법도 원에서 전래되었을 것이다. 본래 ‘타락’은 ‘torak(말린 우유)’라는 몽골어에서 유래되어 ‘발효유’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며, <월인석보>(1459)에 처음 등장한다. 목장개념의 ‘유우소’는 조선시대에 ‘타락색(駝酪色)’으로 명칭이 바뀌고 그 위치는 동대문에서 동소문에 걸치는 동산 일대의 타락산이 해당된다. 타락산은 후에 낙산으로 불리고 위치는 지금의 한성대학교 근처이다.  

 

인류는 우유의 영양적 가치를 어떻게 눈치챘을까? 우유를 짜는 모습의 동굴 벽화(부조)가 유프라테스강 인근에서 발견되었고 이집트의 나일강 변 사원에는 벽화(그림)로 남아있는데 시기는 기원전 3,500년~4,000년경으로 보고 있다. 나일강 변 사원의 벽화에는 치즈와 버터를 만드는 과정도 함께 남아있어 유제품도 상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는 농사를 짓는 가축으로 중요한 자산이므로 우유는 송아지를 위한 용도로 여겼으리라. 우유는 보편화된 음용 식품이 될 수 없었으며 ‘타락죽’은 궁중이나 상류층에 허용된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타락죽의 조리법은 <증보산림경제>·<규합총서(閨閤叢書)>·<부인필지>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규합총서>(1809년, 빙허각 이씨) 에는 우유와 무리(쌀)의 비를 1:0.8 정도로 하여 재료의 비는 다소 가감할 수도 있지만 우유보다 무리가 많은 것은 좋지 않다고 하였다. 조리법은 먼저 무리로 되직하게 죽을 쑤다가 거의 익었을 때, 우유를 함께 넣고 뭉근한 불에서 고르게 섞으면서 반투명의 상태가 되도록 끓여준다. <증보산림경제>(1766년, 영조 42)에 실려 있는 조리법은 조금 다르다. 먼저 우유 한 되에 물 두 홉가량을 섞어 뭉근한 불에서 서너 번 끓어오르게 한 다음 우유막(피막)을 살짝 건져내고 죽을 끓이도록 하였다. 일반적으로 죽은 재료의 5~6배의 물을 붓고 끓이거나 채소나 동물성 식품 또는 견과류로 죽을 쑬 때는 쌀을 갈아앉힌 세미심(細米心)이나 그 앙금을 말린 가루를 넣고 끓인다. 조선시대 궁중 음식인 ‘타락죽’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알고 많이 활용하면 좋겠다. 궁중음식은 전문조리사에 의하여 개발되고 전수되어온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개발된 음식은 잔치 때 반기라는 풍습으로 사대부에 전해지고 이는 다시 서민에게까지 전달된 우리가 지키고 전수해야 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타락죽 만드는 법

재료: 160g(3/4컵), 우유 800mL(4컵), 물 400mL(2컵), 소금 적량, 설탕 적량

1. 쌀을 씻어서 물에 충분히 불린 후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다.

2. 분쇄기에 쌀과 적당량의 물을 넣고 갈아서 고운체에 밭힌다. 체에 남은 찌꺼기는 버린다.

3. 두꺼운 냄비에 갈아 놓은 쌀과 남은 물을 부어 불에 올려서 가끔 나무 주걱으로 저으면서 끓인다.

4. 흰죽이 거의 퍼지면 우유를 조금씩 넣어 나무 주걱으로 멍울이 생기지 않게 풀어서 잠시      더 끓인다.

5. 따뜻할 때 그릇에 담고, 먹을 때 각자가 기호에 맞추도록 소금과 설탕을 따로 작은 그릇    에 담아낸다. <농촌진흥청 전통향토음식 DB> 

● 체에 남은 찌꺼기는 함께 사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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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교수/위덕대 외식산업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