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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으로 쌓아가는 보살행

밀교신문   
입력 :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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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마지막 달력을 앞에 두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올바른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떨어지는 낙엽이 온 몸을 던져 낙화하는 모습에서 쓸쓸한 인생의 한 단면을 보기도 하고, 온몸의 온기를 빼고 바스락거리는 처절함에 희생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제2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낙엽의 색감은 인고의 세월 속에서 만들어지는 승화된 색깔이다. 자연의 한 부분인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드신 보살님들의 표정에서도 패기만만한 젊음의 시간을 지나 성숙하게 무르익은 낙엽의 느낌이 난다.

 

2년 전 전라교구 항수 심인당으로 발령을 받은 후, 정사님이 교구 발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우선적으로 교구 합창단이 없으니 합창단부터 창단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부처님의 가피와 보살님의 정성으로 지금까지 잘 활동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11월에는 교구합창제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행사 전날 도착하여 1박을 한 전라교구 합창단원들은 긴장 속에서 밤을 보냈고, 합창제가 다 끝나고 단원들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두 보살님은 저를 보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한 보살님은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적은 연습량 때문에 가사를 외우기 위해서 싱크대 앞에 가사를 붙이고 설거지를 하면서 외웠다고 하고, 또 다른 분은 밤에 잘 때 꿈속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보살님은 아침부터 머리하고 시집갈 때 이 후 처음으로 속눈썹도 붙였다고 하면서 여러모로 감격스러워서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고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 자신도 마음이 먹먹해졌다.

 

보살과 중생의 차이는 무엇일까?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인간 세상에 자발적으로 태어나서 중생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겪으며 보살행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 반면에 중생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여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보살행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까? 아마도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을 가득히 담고 정성스럽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들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요즘같이 시간이 돈과 같은 시대에 자기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불사를 위하여 쓰고, 같은 지역도 아닌 타 지역까지 가서 합창을 하는 것은 대단히 신심 깊은 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 순간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는 그 모습과 그 순간만큼은 37존 불보살 가운데 금강가보살(金剛歌菩薩)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합창제를 여러 번 경험한 분들에게도 감동적이고 즐거운 행사이지만 전라교구 교도분들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행사였던 것이다. 무대 위에서 5~6분 정도 노래 부르는 시간이 나오기까지는 창단 후 15개월이라는 시간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을 위해서 같은 전라교구이면서도 도나 시가 다른 지역에 계신 교구 스승님들이 매번 승합차로 연습 때마다 보살들을 인솔해오고 가는 번거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주셨다. 또한 코로나 시국에 심인당에서는 단체가 모일 수 없어서 합창 연습 장소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라마다호텔 사장님이신 선덕훈 보살님은 무료로 이벤트홀을 빌려주셨고, 지휘자 선생님은 부산에서 전주까지 3시간을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달려와 주셨다. 또 합창복을 정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을 때 반주자님께서 여기저기 열성적으로 알아보고 좋은 조건으로 구해주신 부분도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합창제에서 노래를 부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었는지 짧은 순간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시구절인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표현에서처럼, 가을에 피는 국화 한 송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인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정성의 결정품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어설픈 결과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주 작은 애벌레의 몸짓도 법이며 진리이고, 이 또한 모든 중생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국화꽃이 피는 평범한 일에서 자연의 조화로움과 거룩함을 잡아내는 시인의 눈처럼 진리를 깨닫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구체적인 보살의 실천 또한 인연의 진리를 현실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라 본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중생의 관점이 아닌, 인연으로 어우러진 모든 존재를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은 모든 생명들을 내 몸 같이 소중히 대하는 것이며, 일상 생활 속에서 새벽 불공, 자성일 불공, 월초 불공, 새해 불공을 행하여 생활 속에서 보살의 행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다. 이 또한 보살의 다져진 신심으로 행할 수 있는 실천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법장비구의 지극한 48가지 서원이 서방 극락세계를 건설하지 않았던가!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으로 쌓는 모든 행동이 바로 이 땅을 극락으로 만드는 보살행이 되는 것이다

 

승수지 전수/항수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