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밀교신문   
입력 :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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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원 이전과 교화의 계승

2. 종행정의 혼란과 교화의 지속

3) 교법의 개선과 의식의례 


(1) 진각교전 간행

종단의 의식 의례는 교리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수행과 신행의 구체적 실천 절차이다. 그동안 시행하여 오던 종단의 의식 의례를 통일하기 위해 의례 준칙을 마련했다(27,8.17). 홍교위원회에서 마련한 준칙을 검토 심의하고 재수정하여 다시 결의하기로 했다. 특히 종조멸도제를 종조열반절, 종조탄생회를 종조탄생절 등 종단의 기념행사를 절(節)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의례준칙의 수정을 기초로 하여 법요의례를 제정하고 소책자로 간행했다(27,10.25). 종단의 교리에 입각한 법요의례를 제정하여 일상의 신행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공식불사 시간의 진언 낭독이 문제가 되어 공동으로 2회 고성 낭독하는 원칙을 확인하고 불사 중 수마(睡魔)를 다스리는 방편을 논의했다(27,8.17). 

 

종단의 기본 교화 경전인 법불교문을 진각교전(眞覺敎典)으로 개칭하고 수정 증보하여 발행했다(28,9.10). 진각교전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꼬지경 법설의 보존을 위하여 종조 재세 당시의 꼬지경의 법설을 진각교전의 내용에 맞추어서 적절하게 배치하고 보리심론 등의 논설은 말미에 수록했다. 그리고 공식불사 순서에 반야심경을 독송하기로 했다(30,3.9). 반야심경을 독송할 경우 ‘일체(一切)’를 생략하고 제호는 한 번만 독송하며, 당분간 해탈절 열발절 등 기념행사의 공식불사에 한하여 독송하고, 나아가 열반 강도와 열반 49일 불사 등 스승이 적절히 정하여 독송하기로 했다. 불교는 삼보의 종교이므로 의식의례는 삼보의 예참으로 시작한다. 종단은 현교의 삼귀의에 대하여 삼귀명(三歸命)으로 예참하기로 논의했다(32,4.27). 


(2) 법의 제작과 선대스승 추념불사 

복식(服飾)은 사회적 위의를 표방하는 대표적 상징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복식 제작을 연구하기로 한 종의회 결의(32,4.27)에 따라 스승의 품의를 유지하며 교화활동에 편의를 위하여 스승의 법복을 통일했다. 전수의 법복은 쇠동색(짙은 밤색) 한복(여름 상의는 횐색)과 양장으로 통일했으나 정사의 법복 색상은 특별한 규정이 없었다. 전수의 쇠동색 색상에 맞추어 정사의 법복도 통일하고 처음 시행할 때는 전원 무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다(28,10.11). 

 

쇠동색이 비교적 다른 색상과 잘 어울리고 더러움을 덜 타는 특징을 수용하여 법복의 색상으로 선택했다. 스승의 복식은 불사의 집전과 일상생활에 입는 법복과 의식의례의 집전에 수(垂)하는 법의(法衣)가 있다. 스승의 법복 통일에 이어서 법의를 제작했다. 기존의 법의가 생활불교에 부적절하고 착용에 불편이 있어서 새로운 법의를 제작하기로 했다(34,8.2). 종의회는 원의회의 논의를 의결하고 진미색 장삼형과 밤색 낙자(絡子)에 종자(種字) ‘옴’자를 수놓는 양식의 법의를 제작하여 의식의례 행사에 수하도록 했다(34,9.30). 스승의 법의가 제작되어 춘기강공에 맞추어서 법의정대식을 봉행했다(35,4.21). 그리고 교법파동이 수습되어 스승의 위의를 보지(保持)하고 교화의 신념을 다시 다지는 의미로서 모든 스승에게 삼매야계를 설하고 계첩을 수여했다(29,4.25). 또한 새로 임명한 휴명 외 7명의 스승을 위해 법의정대와 삼매야계의 수계식을 가졌다(35,10.20). 

 

교화 초기에 제정하여 실시하던 중 여러 문제가 발생해 중단한 서원가를 다시 제정하기로 논의했다(32,4.27). 그러나 실행하지 못해 우선 서원가 제정을 위한 서원가 가사 현상모집을 했다(36,3.15). 서원가 현상모집에서 창교절의 노래(박문재), 열반절의 노래, 자성학교 교가(장용철) 등 5편의 당선작을 뽑아서 시상식을 열었다. 교화에 평생을 바치고 열반한 스승이 늘어나면서 스승의 위업을 기리고 공덕을 선양하기 위하여 매년 추기강공 중에 선대스승 추념불사를 봉행하기로 했다(36,9.21). 원의회의 결의에 따라서 첫 선대스승 추념불사를 추기강공 중에 봉행했다(36,10.19). 

 

4) 금강회와 청년회 조직

(1) 중앙금강회의 조직

신교도 조직인 금강회 조직에 대한 논의는 계속했지만, 실제 중앙 조직은 하지 못하였다. 교법파동이 마무리되어 중앙금강회 조직을 다시 논의했다(27,1.31). 각 심인당 금강회 회칙도 통일하여 중앙금강회 조직을 서둘러 하기로 하였다. 회칙은 종단의 참고자료 및 희망사항을 참조하여 금강회에서 제정하도록 하고, 중앙회장 및 간부는 신심이 독실하고 사회적 명망이 있는 교도 중에서 통리원장의 제청으로 하며, 청년부를 두자는 논의를 했다. 그러나 중앙금강회 조직은 종단의 행정 불안으로 미루어 오다가 종권 파동 중에 창립총회를 소집하였지만 12인이 동원한 신교도들의 항의로 무산됐다(33,11.29). 한 달 후 다시 대의원 대회를 소집하여 전국신교도회를 창립했다(33,12.20). 회장에 최용한(崔龍漢), 최재홍 등 4인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신교도회가 종행정에 깊이 관여해 신교도회를 불신임했다(34,9.3). 종단은 본원심인당을 비롯하여 개별 심인당의 총인원 방문과 종조전 참배를 장려하고 신교도들의 신심을 북돋웠다(35,5.7). 


(2) 전국청년회 창립

전국청년회의 모태가 된 대구지구 청년회(회장 권영재) 결성을 위한 총회가 희락심인당에서 개최됐다(18,8.14). 그리고 청소년의 교화를 위하여 대구고등학생회(회장 강용수)가 창립됐다(21,3.12). 대구 청년회 고등학생회의 창립이 도화선이 되어 포항고등학생회가 창립되어(21,11.11) 일시 활동을 중단한 후 재창립(회장 김철환) 되어(24,6.14) 회지 우담화를 발간했다. 

 

그리고 부산지부 청년 고등학생회(22,3.1) 경주지부 고등학생회(22,9.15)가 창립하여 포항지부와 연합활동을 했다(24,10.17). 그러나 대구 청년 고등학생회 이외는 활동이 부진하여 종단은 청년 고등학생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재정적 지원으로 육성하기로 했다(27,1.31). 

 

종단의 청년 고등학생회 육성 방침에 따라서 먼저 서울지부 청년회의 창립 발기인회를 열고(27,3.18) 4명의 발기인 대표를 선정했다. 서울지부 청년회는 발기인회의에 따라서 많은 신교도와 종단의 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40여 명의 회원이 동참하여 통리원 구내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27,4.1). 회장에 강용수를 선출하는 등 집행부를 구성하고 1월과 9월에 정기총회를 열고, 매월 첫째와 셋째 자성일에 정기집회를 가지고 토론회 강연회 등 여러 활동을 하기로 했다. 서울청년회 창립에 이어 대전청년회도 발기인회를 열었다(27,4.15). 그리고 서울고등학생회도 3번의 발기인회를 거쳐서 창립총회를 열고 권표 회장 등 집행부를 결성하고 활동에 들어갔다(27,7.15). 대전지부 청년회에 이어서 고등학생회를 창립하고 김동현을 회장으로 선출했다(28,3.3). 각 지역 고등학생회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심인당별 분회를 인정하고 우선 대구 희락분회 보원분회, 대전 신덕분회 입실분회를 인정했다(30,1.1). 지역의 청년 고등학생회의 창립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중앙조직을 통하여 체계를 통일하고 효과적인 활동을 하기로 했다. 통리원이 주관하는 전국 청년 고등학생회 하기수련대회를 개최하고 수련대회 기간에 전국청년회를 창립했다(27,7.29). 전국 청년 고등학생 200여 명이 참가해 3일간 진행한 수련대회는 교리의 이해와 수련 정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신심을 북돋웠다. 또한 전국청년회 창립총회를 열어서 회장 강용수, 부회장 장승환, 이용호, 김경희를 선출하는 등 집행부를 구성했다. 청년 고등학생회 수련대회는 지속적으로 지부별 또는 연합으로 매년 개최했다.

 

전국청년회가 창립되면서 전국의 청년 고등학생회는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천국청년회는 교리의 이해와 회원 간의 소통 등 청년회 활동과 홍보활동을 위하여 회지 진여(眞如)를 창간하여 연 2회 발간하기로 했다(28,4.10). 회지 진여는 처음 대구지부에서 프린트본으로 창간하고(19,12.4) 일시 중단해 전국청년회 회지로 재발간했다. 지역의 청년 고등학생회는 지역 사정에 맞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자체의 회지도 발간했다. 대구희락(마니주) 포항(우담화) 서울(자등명) 대구 보원(보리행) 등이 회원의 적극적인 참여로 발간했다. 전국청년회는 진여를 발간하고 회원의 단결과 협동심을 고취시키고 청년회원의 긍지를 앙양하기 위해 전국청년회가를 공모하여 작사 김옥순, 작곡 강경화 작품을 제정 발표했다(29,12.1). 나아가 전국청년회는 제1회 지방 순회법회를 3일간 9개 지역을 3개 반으로 나누어 실시했다. 지방 순회법회는 진각종의 입교개종 삼밀관행의 묘득을 주제로 혜일, 도흔 등 7명의 스승이 법문을 했다(30,8.18). 

 

전국청년회는 회원의 단합과 신교도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제1회 진각의 밤 행사를 통리원 강당에서 열었다(34,6.14). 연극 무용 노래자랑 등 프로그램을 통하여 관중의 호응을 얻고 진각인의 긍지를 높였다. 진각의 밤은 지역에 어울리는 명칭으로 확산되어 개최됐다. 그리고 전국청년회장 김무생은 청년회원이 교리와 수행법을 이해하고 청년회의 역사를 인식하며 나아가 청년회의 홍보를 위하여 ‘교의교본(敎儀敎本)’을 편집 발간했다(35,6.20). 또한 서울청년회가 창교절 기념행사로 시내 자성학교 백일장 대회를 여는(35,6.14) 등 전국의 청년 고등학생회는 활기찬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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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종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