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정담 부부묘 목관 출토 판본

밀교신문   
입력 :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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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정담 부부묘의 주인공인 정담의 사망 년대와 무덤의 조성 시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시신의 상태와 출토 복식 등으로 보아 16세기 전반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고분은 사신도 등이 새겨져 있어 도교적인 요소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적 유교사관이 널리 성행하였고, 주자가례에 의한 고분 조성이 일반화되었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도 정담 부부묘는 불교와 도교가 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된다. 이 고분은 시신을 안장했던 목관 안쪽 면에 다라니, 사신도, 비천상 등을 낱장으로 인쇄한 판화가 확인되었다. 이중에서 다라니(23.5×45cm)는 목관 안쪽면의 한 면마다 1장씩 인쇄한 판화를 3면에 부착하였다. 인쇄된 다라니는 오른쪽에 불정심인을 새겼으며, 가운데에는 불정심인 형상을 모방한 만다라를 배치하였고, 왼쪽 상부에는 육자진언을 새기고, 그 아래쪽에는 호부를 새겼다. 호부 아래에는 사각형으로 구획하여 성정각 묘시인당 득견불’, ‘정토묘 지인당 화정토’, ‘보우묘 지인파지 파이라고 새겨, 각 호부의 성취 내용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목관에 진언집의 앞부분에 전재된 다라니를 새긴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이 살아생전 불심이 깊었던 인물이었으며, 후손들이 그러한 점을 반영하여 불교식으로 추복과 극락왕생을 염원하기 위하여 다라니를 부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