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출토 양택춘 묘지

밀교신문   
입력 :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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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택춘(1172~1254)은 신라 계림출신으로 원래의 성은 김씨였는데, 나중에 대방군으로 이주하여 양씨로 성을 바꾸었다. 고려시대 최이는 강화도에 선원사를 창건하고 당대의 뛰어난 승려들로 하여금 모임을 주관하도록 했는데, 양택춘의 큰 아들로 승려였던 원오국사 천영(속명 안기)이 이를 주도하였다. 이후 양택춘은 아들의 후광으로 70세에 호부원외랑이 되었다가 벼슬에서 물러나 125483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처음 김수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두 아들 모두 승려가 되었다. 이처럼 양택춘은 두 아들이 승려가 될 만큼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묘지명에도 여러 진언이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묘지명은 김구가 지었다. 진언은 묘지명 뒷면에 세로로 새겼는데, 먼저 범어로 진언을 새기고, 그 뒤에 진언명을 표기하였다. 진언은 상품상생진언-육자대명왕진언-보루각진언-결정왕생정토주 순으로 새겼다. 양택춘 묘지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