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63-하루를 살다

밀교신문   
입력 :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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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들의 일일생활계획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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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누구에게나 아주 평등하게 주어진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하루라는 시간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1년이란 시간을 살았는데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 아쉽기만 합니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한 해를 반성하면서 새해에는 달라지겠다며 사람들은 일일생활계획표를 짜기도 합니다. 새해부터는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을 알차게 활용해볼까? 퇴근 후에 외국어라도 배워볼까?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근육을 키워볼까? 건강을 위해 금주와 금연을 과감하게 실천해볼까? 이런 생각들은 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요즘 ‘루틴(routine)’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빤한 하루살이에 특별한 행동을 집어넣고 그것을 몸에 배이도록 꾸준하게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 그 행위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가리켜 ‘데일리 루틴’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이 말은 ‘일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익숙한 ‘일과’라는 말보다 ‘루틴’이라는 말을 더 자주 씁니다. 루틴이라는 말 속에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는 강한 정신력이나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강제력이 느껴져서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철저하게 시간을 쪼개어서 하루를 살아간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루틴을 살펴보면, 기상시간은 새벽 4시. 그리고 저녁 9시30분이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의 평전을 쓴 제프리 애쉬에 따르면, 간디는 시간관념이 철저했고 청결을 중시했습니다. 간디는 낮에는 늘 두 차례씩 짧은 거리를 산보했고, 해지기 전에는 기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밖의 시간에는 밀려드는 방문객들을 만났는데 정확하게 시간표를 짜고는 한 사람씩 만났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허리에 찬 무거운 구식시계로 시간을 잰 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면담을 끝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했는데 메뉴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빵이나 토스트 세 조각, 오렌지 두 개, 포도 한 송이나 건포도 한 줌 그리고 염소 젖 16온스가 전부였지요. 16온스는 대략 500㎖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일과가 어찌나 규칙적이었는지 주변사람들은 예외적으로 시간을 지키지 못했던 간디를 회고하며 바로 그 날 암살당한 그의 모습을 떠올릴 정도입니다. 그날 간디는 정치인과 면담을 했는데 평소와 다르게 약속된 시간을 넘겼습니다. 곁에서 시중을 들던 이가 시계를 집어 들어 보여주자 간디는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몹시 초조했다고 합니다. 5시에 정원에서 기도 모임이 있는데 거의 10분이나 지나서 정원의 기도회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무척 싫어한 간디로서는 퍽 이례적인 행동을 한 셈입니다. 그가 몰려든 사람들에게 합장인사를 올리는 바로 그때 힌두 청년 나투람 고드세의 총탄을 받고 쓰러졌습니다. 쓰러지는 순간 간디의 주머니에서 시계가 흘러나와 땅에 떨어져 부서졌는데 그때 초침은 5시17분을 가리켰지요. 바로 이 시각이 그가 지상에서의 삶을 마친 순간입니다. 간디와 시계에 관한 일화는 라마 수리야 다스의 책 '붓다의 시간관리'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이 일정하고 산책하는 시간과 기도시간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식사가 언제나 같은 메뉴였기 때문에 간디의 루틴에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자국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였으며, 언제나 마음으로 자신의 행동이 종교적 믿음과 수행에 어긋나지 않는지를 반추한 사람이었습니다. 국가적인 큰일을 할 때나 바느질과 같은 소소한 일을 할 때면 현재 시간을 잊고 있는 듯 그 일에 몰두했습니다. 평생 자신의 일과를 규칙적으로 꾸준하게 밀고나간 힘으로 간디는 그 엄청난 일들을 다 해낸 게 틀림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떨까요? 여러 학자들이 정리한 부처님의 하루 일과에 따르면, 부처님의 하루는 아침 5~6시에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온 세상을 두루 관찰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루틴입니다. 깊은 삼매에 들어 세상을 관찰하면서 오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이가 깨달음의 인연이 무르익었는지를 살피고,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아침탁발을 나가십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탁발 할 때에는 오직 탁발만을 하십니다. 사람들의 대문 앞에서 발우에 밥을 받으시면서 인생상담을 겸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마치 지금 현재는 오직 그 일 하나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 말이지요. 음식을 얻으면 가까운 그늘로 가서 그곳에서 천천히 집중하며 음식을 먹고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소화를 시키는 데에 시간을 보냅니다. 부처님이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대체로 탁발을 하러 가시는 길이거나 탁발을 마치고 음식을 다 드신 뒤의 일입니다. 이것이 정오가 될 때까지 부처님의 오전 루틴입니다.
 
인도는 더운 나라여서 한낮에는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경전에는 부처님과 스님들이 ‘한낮의 명상’에 들었다가 저녁이 가까워지면 그때 ‘한낮의 명상에서 일어나신다’고 말합니다. 한낮의 명상은 더위를 피한 휴식시간이기도 하지만 조용하고 시원한 그늘에서 선정에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필요한 제자들이 다가와 가르침을 청하기도 하고, 재가신자들이 부처님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전을 살펴보면 부처님이 하루 중에 한낮을 보내는 모습은 여유롭고 한가합니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저녁 일과가 시작됩니다. 재가신자들이 부처님을 찾아와서 뵙기를 청합니다. 아난존자의 현명하고 매끄러운 주선으로 부처님 친견을 마친 재가신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이제 스님들이 부처님에게 나아가 법문을 청해듣는 시간입니다. 한낮의 명상을 통해 무엇을 사색했는지 부처님에게 고하거나 평소 궁금했던 것을 여쭙기도 하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특별한 주제로 법문을 베푸는 시간이지요.
 
어둠이 내려앉는 조용한 숲 속에서 제자들은 부처님 말씀에 집중합니다. 기침소리 내는 것도 조심하며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잘 기억하고서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깊은 사색에 잠깁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부처님 가르침이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정진합니다.
 
지상의 사람들이 부처님 곁에서 완전히 물러가는 시간은 대체로 밤10시쯤입니다. 요즘처럼 전깃불을 환히 밝히던 시절이 아니니 이 시각이면 깊은 한밤중인 것이지요. 이 때 부처님 주변이 눈부시게 환해집니다. 천상의 존재들이 부처님을 친견하러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천신은 인간세상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부처님께 그 일을 고하고, 어떤 천신은 가르침을 청하고, 어떤 천신은 부처님을 찬탄합니다.
 
천상의 존재들이 부처님을 뵙고 기쁨에 가득 차서 떠나가면 어느 사이 시간은 새벽 2시를 훌쩍 넘깁니다. 이때부터 부처님은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당신의 처소에 마련된 경행처를 천천히 거니시며 시간을 보낸 뒤에 방으로 들어가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우십니다. 이때가 세속 사람들이 말하는 수면시간이지만, 부처님은 곧 일어나겠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5~6시에는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하루 일과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일일생활계획표를 평생 이어나갔으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루틴이라 해도 좋습니다. 앞서 마하트마 간디의 경우도 그렇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경우도 하루 일과에서 유별나고 유난스러운 스케줄은 없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은 부처님이나 간디나 보통 사람들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삶은 인류에 지혜의 빛을 안겨주었고, 어떤 삶은 회한으로 가득 찬 채 그냥 막을 내리지요. 그 차이는 자기 일상의 평범성을 견뎌내는 힘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마음에 담고서 오늘을 자꾸 어제에 견주어보며 똑같다고 실망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와서 내일이 오늘과 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며 지레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고, 지금은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이 현재는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니라 일생에 딱 한번 밖에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지요. 이걸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다람쥐 쳇바퀴로 보느냐 아니면 일생에 딱 한번 밖에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매 순간 깨어있고 늘 일상의 행동과 생각을 마음으로 잘 챙기고 알아차리며 하루를 지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루틴이요, 이것이 바로 평범성을 견디는 힘입니다. 간디가 그리했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열심히 살아온 올 한 해는 따뜻하게 보내주고, 다가올 새해는 마치 처음 살아보는 것처럼 또 열심히 살아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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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