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의 산실-밀엄심인당

밀교신문   
입력 :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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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개설된 후 서울 종로구로 이전한 심인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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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본지에서 상엄심인당을 다룰 때 진기 16(1962)년에 개설된 심인당을 설명하면서 폐쇄로 기재했던 원력(밀엄)심인당을 살펴보고자 한다.
 
종단 자료에 의하면 대구에 개설된 원력심인당은 11월 29일 대구 남산동 전 삼정미장원 건물을 개수해 진기 17(1963)년 2월 12일 심인당을 개설했으며, 진기 18(1964)년 3월 30일 심인당 명칭을 밀엄으로 개칭한 후 진기 22(1968)년 1월 10일 서울 교남동 65 대지를 매입해 심인당 2층과 사택 3층으로 건립해 이전했다.
 
당시 원력심인당은 종단에 근무하는 종무원들이 일반 신교도와 구분하여 수행하도록 하려는 취지에 개설된 심인당이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회당 대종사가 건축공사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접 교화한 곳이기도 하다.
 
밀엄심인당이 서울에서 자리잡은 교남동의 동명은 교남동 100번지 북쪽, 교남파출소 앞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 하여 다리의 남쪽 동네를 교남동, 북쪽을 교북동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석교(石橋)는 1830년에 유본예가 지은 ‘한경지략’에 석교, 1864년에 김정호가 만든 ‘대동지지’에는 초교(草橋), 고종 초에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에는 교량의 표시만 되어 있고 1902년 로얄 아시아틱소사이어티에서 간행한 ‘서울지도’에는 석교라고 표시되어 있다.
 
석교는 교북동·천연동·교남동에 걸쳐 있어서 지금의 의주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셈이 되었다. 석교가 있어 돌다리골 혹은 석교동이라 하였는데 사람의 통행이 빈번해 장시(場市)가 형성됐다. 무악재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가꾼 각종 농산물을 다리께에 펼쳐 놓아 난전이 형성되곤 하였다. 이 난전은 지금의 영천시장 끝과도 연결되어 서대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였으며, 1898년 서대문↔청량리간 전차궤도가 부설되고 난 후 독립문 로터리 부근에 있던 전차종점과 가까운 이 일대는 자연스레 시장으로 번영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또 교남동과 평동·충정로1가에 걸쳐 있는 마을을 평동 혹은 거평동이라 하여 교남동의 중심이 되었다.
 
거평동과 바로 이웃한 마을을 찬우물골·냉정동 혹은 줄여서 냉동이라 하는데 찬우물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또 개천가에 있는 마을은 천변동 혹은 개천께라 하였는데 교남동·송월동·홍파동에 걸쳐 있었다. 복개가 된 이곳의 일부를 현재 유료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의 교남동은 북쪽으로는 사직동, 세종로동과 동쪽으로 중구 정동, 서쪽으로 서대문구 영천동, 옥천동, 천연동으로 남쪽은 냄천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밀엄심인당은 이곳에서 50여 년의 교화활동을 마감하고 진기 72년 4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애니골길 15-9에 연면적 644.63㎡, 지상 3층(1층 법담실, 2층 심인당, 3층 사택·자성학교) 규모로 새롭게 심인당을 이전 신축했다.
 
밀엄심인당이 자리한 이곳은 경기도 고양시의 풍산역 인근에 걸쳐진 대표적인 외식, 카페 골목이다. 풍산동은 일산동구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마을로 서로는 백석동, 마두동이 있고 동으로는 덕양구 주교동, 식사동이 있으며 남으로는 백석동, 내곡동, 그리고 북으로는 일산동, 식사동과 이웃하고 있다. 풍산동은 풍동지구가 개발되기 이전의 농촌마을과 숲속마을 등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애니골로 대표되는 전문식당가 마을 등 다양한 주거 형태가 공존한다. 풍산동에서 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 풍동이다. 풍동은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단독주택단지, 고양시의 대표적인 먹거리촌을 이루고 있는 애니골, 그리고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밀엄심인당 초대 스승은 인강(김희봉) 스승이다. 인강 스승은 입교개종 초기부터 회당 대종사를 도와 종단 창업에 크게 기여했다. 종행정과 교화의 양 측면에서 누구보다 회당 대종사의 신망이 두터웠으며, 특히 인강 스승은 “손톱으로 여물을 썰 듯이 정재(淨財)를 아끼라”고 후학들을 지도한 근검절약의 정신을 일깨우기도 했다. 통리원장을 비롯해 유지재단 이사장, 학교법인 회당학원 이사, 종헌기초위원, 통리원 총무부장, 재무부장, 중앙교육원장, 진각대학장 제1대~8대 종의회 의원, 종의회 의장 등 종단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종단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데 역할을 했다. 인강 스승은 진기 48(1994)년 10월 19일 대종사에 품수됐으며, 진기 51(1997)년 5월 19일 기로 진원 후 59(2005)년 1월 29일 열반에 들었다. 영안행 스승은 진기 49(1995)년 4월 종사에 품수됐으며 진기 51(1997)년 5월 19일 퇴임했다. 인강·영안행 스승은 진기 23(1969)년 4월부터 진기 24(1970)년 1월말까지 잠시 탑주심인당으로 전출갔다가 2월 4일부터 다시 밀엄심인당으로 부임해 진기 51(1997)년 4월 30일까지 27년간 서울 종로구 교화를 책임졌다.
 
이어 밀엄심인당에는 밀각심인당에서 부임해 온 지명혜(마정자) 스승이 진기 62(2008)년 5월까지 약 11년 간 교화에 매진했다.(증일심인당 편 참조)  
 
지명혜 스승 후임에는 법륜심인당에서 부임해온 덕정(김우식)·불지인(조진강) 스승이 진기 72년 4월까지 약 10년 간 교화에 임했다. 이시기 본존장엄가지불사를 비롯해 밀엄심인당 이전 신축 헌공불사 등 다양한 불사가 거행됐다. 현재 이곳 심인당에는 진기 72(2018)년 4월 대원심인당에서 부임해온 정일(현진욱)·선일지(배성미)이 스승 교화를 이어가고 있다.
 
밀엄심인당
진기 16(1962)년 11월 29일 대구시 남산동 583 전 삼정미장원 건물 개수
진기 17(1963)년 1월 21일 원력심인당 준공, 인강(김희봉) 스승 시용 임명
                      2월 12일 원력심인당 개설
                     12월 12일 영안행(김일선) 스승 성서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18(1964)년 3월 30일 심인당 명칭을 밀엄으로 개칭
진기 22(1968)년 1월 10일 대구 남산동 583에서 서울 종로구 교남동 65으로 심인당 이전
진기 23(1969)년 3월 31일 청정관(이초자) 스승 부임(총지종으로 옮김)
                          인강·영안행 스승 탑주심인당으로 전출         
진기 24(1970)년 2월 4일 인강·영안행 스승 탑주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43(1989)년 8월 22일 교남동 66, 66-1 건물 매입, 사택 및 학생회관 사용
                     10월 31일 관증(김성수) 스승 교화보조 임명
                     11월 15일 선혜장(김효순) 스승 교화보조 임명
진기 51(1997)년 4월 30일 지명혜(마정자) 스승 밀각심인당에서 부임
진기 62(2008)년 5월 27일 덕정(김우식)·불지인(조진강) 스승 법륜심인당에서 부임
                      12월 18일 밀엄심인당 본존장엄가지불사
진기 71(2017)년 6월 12일 밀엄심인당 이전신축 지진불사
                      11월 20일 밀엄심인당 이전신축 상량불사
진기 72(2018)년 4월 19일 밀엄심인당 이전 신축 헌공불사
                     4월 26일 덕정·불지인 스승 혜원심인당으로 전출
                                정일(현진욱)·선일지(배성미) 스승 대원심인당에서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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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기자 san108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