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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황진수(한성대 교수)   
입력 : 2004-10-02  | 수정 : 200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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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에서 '너 철수냐?'라고 묻는 것은 부정적 의문문이라고 한다. 네가 철수가 아닌데 왜 철수라고 하느냐 라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너 철수 아니냐?'라고 묻는 것은 긍정적 의문문이다. 분명히 철수인데 왜 철수가 아니라고 하느냐 라는 것이다. 이런 틀 속에서 이번 칼럼의 주제를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분명히 부정적인 대답을 예감할 것이다.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해의 국민소득은 50불 내외였다. 그리고 평균수명도 40세 정도였다. 그 때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밥이나 굶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유지하고 이산가족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1960∼1970년대에는 배고픈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것인가가 우리 모두의 소망이었다. 1980∼1990년대에는 어떻게 하면 경제발전의 어두운 부분이었던 나라의 민주화를 이룩할 것인가가 우리의 화두였었다. 지금 우리는 희구하던 소원이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 이제 배고픈 문제도, 민주화도 국민의 노력으로 이루어 냈다. 장한 국민이고 위대한 시민정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럼 2000년대 우리가 서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소원은 무엇일까.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다른 나라는 국가발전을 위해 또 미래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저 우리는 잘 먹고 잘 산다는 막연한 희망만 가지고 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과제(희망)를 던져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표를 짜야 하는데 도무지 그런 것들이 없다. 행정수도이전도 전 국민에게 희망을 준다는 메시지를 주기에는 부족하고, 과거사 규명, 국가보안법철폐 등도 국민여론이 분열되어 있어 국민총의를 집합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희망을 갈구한다. 또 희망(꿈)이 현실로 이루어져 삶의 질이 나아지고 이 땅에 살 우리 후손들이 잘 살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있는가?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