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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 나이테

밀교신문   
입력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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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날에 손 호호 불며 기다렸던 봄도 코로나로 인해 봄이 와도 봄이 아닌 듯 지나가고, 긴 장마와 함께 뜨거웠던 여름 무더위 역시 언제 떠났는지도 기억이 흐려지고, 울긋불긋 어울림의 조화로 펼쳐진 단풍 든 짧은 가을은 아직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겨울을 재촉하듯 떠날 채비를 하는지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느껴집니다.
 
밀어내지 않아도 때를 알고 떠날 채비를 하는, 잠시 머무르듯 함께하다 어느새 저만치 가 있는 계절에게 어여 오라고 손짓도 해보고 마냥 기다리기도 하고,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하며, 흐르는 시간과 세월과 동행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통가구들, 나무의 무늬를 그대로 살리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가구나 찻상, 차 도구 중에는 독특하고 정겨운 무늬들이 눈에 띌 때가 많습니다. 간격도 방향도 일정하지 않고 들쑥날쑥하지만 운치와 멋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좁았다가 넓었다가, 한 줄도 똑같은 폭이 아닌, 한 줄 두 줄 이어진 둥근 무늬, 한참 동안 가만히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기까지 합니다. 그 무늬는 세월을 보여주는 나이테입니다.
 
나무줄기나 가지를 가로로 잘랐을 때 단면에 나타나는 둥근 띠 모양의 무늬, 나무가 한 살 먹을 때마다 생긴다는 둥근 띠 모양의 무늬를, 나이테라 합니다. 
 
나이테는 계절에 따라 나무 성장 속도에 차이가 있어 생기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는 확실하게 나타나지만 따뜻한 곳에서 일 년 내내 성장만 하는 나무에게는 나이테가 없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없으니 성장함에 굴곡이 없어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를 평생 다룬 장인들은 나이테를 보고 이 나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았고,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자랐는지, 촘촘한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을 보면 나무가 서 있던 방향까지 알 수 있으며 어떤 기후와 날씨에 적응하려고 했는지도 알 수 있다 합니다.
 
생장 기간 동안 1년마다 하나씩 생기므로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는, 해마다 둥근 바퀴모양의 테가 하나씩 만들어지므로 연륜(年輪)이라고도 합니다.
 
‘연륜(年輪)’은 ‘나이테’를 가리키는데, 나이테가 쌓인다는 것은 그만큼 햇수가 오래됐다는 표시이고 오래 살았다는 뜻으로, 오래 산 사람은 세상 경험을 많이 쌓고, 그 경험에서 축적된 지혜를 갖게 된다는 의미로, 오늘날에는 ‘나이테’라는 본뜻보다 어떤 일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숙련된 경지에 다다른 상태, 삶의 경험이 많은 나이 드신 분을 존경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나무는 나이를 한 살씩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축척되어 수평으로 둥글게 넓혀 나타냅니다. 그래서 나무의 나이테는 앞뒤 구분 없이 모나지 않고 둥글게 살아가는 모습이어서 나무의 나이테를 연륜이라 하는지도...
 
나이테를 보고 나무의 생장 환경을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얼굴 표정은 그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잘 말해 줍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각자의 삶을 통해 나이테를 만들어 가고,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우리는 각자의 삶의 모양새에 따라 각양각색의 무늬 모양을 만들고 세월의 수레바퀴처럼 지나온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자신만의 색(色), 향(香), 미(味)를 품고 자신의 인격(人格)과 품격(品格)을 나타내게 되지요.
 
세월이 지나며 갖게 되는 나이가 있기에 그에 맞고 그에 어울리는 행동과 삶의 연륜을 가질 필요가 분명 있습니다. 앞으로도 내 삶의 증인으로 나이테는 남겨집니다. 인과법을 인정하고 믿음이 확실하다면 아무렇게 새길 수 없을 것입니다.
 
세월 따라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서 시간이 묻어난 인과를 또렷하게 나무에 자리매김한 나이테처럼 우리 삶의 모습도 인과법의 진리 안에서 많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겠지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격(格)으로 내 삶의 기록을, 나이테를 새길 것입니까?

 

심정도 전수/승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