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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을 사랑했네, 나는

밀교신문   
입력 :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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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한 초가을, 경주시 양북면 두산리에 자리를 잡은 정경심인당에 서둘러 도착하니, 이미 점심 공양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당시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말끔히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심인당 경내를 둘러보니 여러 보살님의 그간의 노력과 수고로움이 한눈에 들어왔다. 올해 들어 처음 방문했을 당시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노보살님이 짬짬이 틈을 내어 관리는 한다고 하지만 연로한 몸으로는 분명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하고 관심을 두지 않은 게으름과 나태함만을 탓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흔적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하루빨리 손을 봐야 했다.

 

우리 일행 22명은 925일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환경미화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우리 종단도 퇴임을 하고 마음의 안식을 꿈꿀 수 있는 영적, 심리적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정신적 고향으로서 힐링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대도시의 번잡한 공간을 벗어나 작은 중소도시나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역사가 오래된 빈 심인당을 보존하고 개조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컸다. 물론 스승님들의 퇴임 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인 기로원이 우리 종단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시골 심인당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갈 때마다 안타까움이 커져만 갔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이제 시골에는 노인만 남게 된 이 시절에 도시의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작은 변화의 물결들이 이어졌다. 각박한 관계의 도시적 삶을 청산하고 살벌한 경쟁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가치 있는 삶을 꾸리며 새로운 변화를 찾아 귀농을 선택한 미래를 앞서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또다시 주목하게 된다. 이젠 살아있는 생태 자연의 땅으로 우주 만물의 생명체인 육대로 돌아가 온전한 회복을 꿈꿀 때다. 그렇다면 우리도 퇴임 후 다시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빈 심인당에 정착할 스승님들의 참신한 헌신적 열정과 새로운 정체성의 탄생을 꿈꿀 때만이 가능하리라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어쩌면 빈 심인당들의 비중 있는 역할을 은근히 기대해 보는 것은 기도의 수행 공간과 더불어 치유 공간의 좋은 모델로서도 손색이 없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류시화의 산문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사람의 이름을 정할 때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물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 이를테면 모두가 어디를 가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가기 싫어했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가기 싫다라고 부르는 식이다. 비를 맞으며 부족에 처음 온 남자는 얼굴에내리는비로 불렀고 어디로갈지몰라’, ‘아직끝내지못한일’, ‘너잘만났다등의 이름들이 그렇게 해서 정해졌다. 자신보다는 남에게 더 많이 사용되는 이름의 특성상, 이러한 작명법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가에 따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내용도 의미심장하게 되새겨 볼 만하다. “남아프리카의 바벰바 부족에게는 잘못된 구성원을 바로잡는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먼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마을 광장 한가운데 세워 둔다. 그런 다음 부족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한 좋은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한다. 부족원 모두가 그 사람의 현재의 잘못 대신 그의 과거를 더듬어 칭찬할 수 있는 모든 좋은 면을 이야기한다. 그런 식으로 부족원 전체가 그 사람의 칭찬 거리를 다 찾아내면, 의식이 끝나고 즐거운 축제를 벌인다. 그의 잘못된 행위를 열거해 자존심을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애정 어린 방법으로 그가 지닌 가치를 상기시킴으로써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교화 방식이다.”

 

위의 문장들이 특별히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아마도 그들이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서로를 존중하며 순응하는 생활방식과 더불어 인디언들의 마르지 않는 정신적 지혜의 샘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스승이었던 순수한 영혼 존재자들의 삶은 언제나 나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공감과 경청능력이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뛰어났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우주 자연의 진리와 만나기 위해 축소와 팽창의 경험을 반복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나는 꿈꾼다. 내 삶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은혜와 감사가 충만한 조화로운 삶임과 동시에 늘 깨어있기를 꿈꾼다.”라고 그래서 여전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무작정 떠난 여행들이 다시금 내면의 세계로 돌아와 고요히 머무를 때라고 말이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