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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버림’은 ‘위대한 길’을 인연합니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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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추석 연휴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수위를 조절하면서 고향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안위와 전 국민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개인의 자유권은 어느 정도 제한되더라도 정부의 방침에 수순하는 것이 종조님의 사상이면서 국민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코로나 정국에 전국 심인당에서는 온라인 비대면 불사로 공식불사를 봉행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추석 명절 차례도 그렇게 올릴 수 있습니다. 가족밴드를 활용한다든지 갖가지 다른 방식으로 직접 동참을 하지 않더라도 기제사나 차례에 동참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상추복 강도불사를 올리면 더욱 좋습니다.

 

시시불공’ ‘처처불공이라고 했듯이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언제 어디서든 예()를 갖춰서 법()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우리 진각종식의 불사입니다. 진각종 창종의 개종이념 중의 하나가 의식과 의례 중심의 불교실천중심의 불교로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차례나 제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조상의 뜻을 기리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후손으로서 참답게 부끄럽지 않게 잘살아 가는 것이 바른 실천입니다. 살아있는 부모에게 효순의 근본을 굳게 세워나가는 것이지요. 그것이 진짜 [] 제사입니다. 살아있는 제사입니다. 가족과 친척 친지들과의 교류와 만남이 제한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코로나 국면에서는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진리에 수순과 실천제사의 격식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는 일반불사나 불공에서도 절차와 격식, 그런 외형적인 것보다 부처님 가르침에 수순하고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나의 뜻과 부처님의 뜻이 충돌할 때, 내 뜻을 접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리의 뜻에 수순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공이고 불사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불공이고 산[]불사입니다. 한마디로 실천 없는 불공은 죽은 불공입니다. 불공 한답시고 심인당에 앉아서 열심히 염송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 원망심만 가득하거나 애착과 집착을 비워낼 수 없다면 그 불공은 죽은 불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본 없이 무엇을 크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생동감 있는 불사가 되어야 하고 참 불공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바닥없는 바닥을 딛고 방향없는 방향으로 길 없는 길을 나선 분이 부처님입니다. 목숨 걸고 만들어 놓은 길이었습니다. 회당 대종사는 어떠합니까? 목숨 걸고 만들어 놓은 방편의 문이 진각종문입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 속에 실현해 나가는 가장 수승한 방편의 문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과 종조께서 바닥없는 바닥위에 목숨 걸고 터놓은 길을 우리는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 걸음을 옮기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를 싯다르타의 위대한 포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진각성존 회당의 심()출가는 위대한 버림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싯다르타의 출가와 회당의 심출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에서는 무엇이 위대한 포기이고 위대한 버림인가?” 다섯 번째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네 번째 계단을 포기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하듯이 버리기 어려운 큰 것 하나 버릴 때 새로운 좋은 큰 것 하나 이루어 내는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를 버릴 것이다. []는 죄의 근본이며 인연의 근본이다. 참된 나[眞我]를 찾기 위하여 헛된 나[假我]를 버려야 한다.”(실행론:3-13-3)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버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헛된 나이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참된 나입니다.

 

삶의 고통과 괴로움의 근본인 번뇌는 애착과 집착에서 일어납니다.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고,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이 법칙은 불교도에게 보편적 자연법칙입니다. 결국은 마음공부입니다. “희사와 하심은 무주(無住)로써 집착과 애착을 여의는 것이다. 아상과 중생상은 무주의 희사로써 다스리고 인상과 수자상은 무상(無相)의 하심으로 다스려야한다.”(실행론:3-13-2) 심공을 통하여 계발하고 키워가야 하는 나의 능력은 희사와 하심입니다.

 

머무를 바 없는 마음이고 붙들 바 없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무주이고 무상입니다. 그것이 희사와 하심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마음농사라고 하였습니다. 종조님은 마음공부라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버림으로 위대한 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