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죽비소리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밀교신문   
입력 : 2020-06-22 
+ -

thumb-20200525142149_db89e40c17e266e80390e0541616b1f0_2cpx_220x.jpg

 

인류는 약 390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해 진화를 거듭하며 손을 이용해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호모 파베르 우리말로 옮기면 만드는 인간 즉 공작인(工作人)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인 생각하는 인간 즉 예지인(叡智人)의 반대편,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손의 소중함을 통해 새삼 노동의 신성한 의미를 다시금 일깨운다.

 

손으로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은 2월 중순쯤이었다. 그것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대구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나갈 무렵이었다. 한동안 이렇다 할 변명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답답한 일상이 계속 이어졌다. 어느 의사는 손톱무좀이라 하고 어느 의사는 손톱습진이라 하며 몇 달째 치료를 거듭해도 별 차도가 없었다. 또 부산의 피부과 의사는 손톱변형이라고 진단했으나, 미루어 짐작건대 3개의 변명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모두 비슷비슷하여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이었다. 의사 3분의 공통된 처방은 간단명료했다. 최대한 손을 물에 접촉하지 않기, 쉽게 말하면 최대한 손 자주 씻지 않기라는 의사 3분 모두가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며 손톱이 새롭게 자라나는 데는 6개월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기 성찰의 시간도 제안했다.

 

내 처지가 이렇다 보니 일상의 모든 노동이 다 손을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의 능력은 대단해 보였다. 손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왜 그토록 철저히 잊고 살았을까. 손이 없으면 기도조차도 할 수 없다는 소중한 사실을, 그리고 고마움을 말이다. 하루 세끼 설거지 담당은 고스란히 정사님과 아버님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수시로 묻곤 했다. 손이 불편하지 않았을 때 손을 가지고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 좋은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을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한 일은 없었는가를 참회하게 된다. 손을 씻지 못하는 작은 불편함이 번번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어겨야 했다. 이렇게 손을 마음 놓고 씻지 못하는 날이 장기화하면서 심리적 불안과 공포가 급속도로 증폭되어 갔다. 급기야 우울증으로 이어질 것 같은 심리적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앞과 옆, 위와 아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 부처님의 은혜, 우리의 육신()을 구성하는 4(, , , )인 자연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형제, 자매간의 은혜, 이웃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와 인류 전 지구상의 유기적 존재들의 은혜와 소중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생물학에서는 말한다. 똑똑하고 강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유전자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변화란 무엇이겠는가. 외형이나 행동방식을 바꿔서 얻을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자 하는 자유롭고 유연한 욕구 충족인 이른바 인식과 관점과 사고의 틀이 효율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발생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손이 내게 일깨워 준 것은 변화에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모든 이들로부터 배우고 존중하며 감사하는 일이었다.

 

김사인 시인은 공부’(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작과 비평, 2015)라는 시에서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남아 배웅하는 일/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말하고 나면 나는/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라고, 그리고 무릎 꿇다라는 시에서는 고요한 곳으로 가/무릎 꿇고 싶습니다/흘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마른 나뭇잎 곁에서/죄 되지 않은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저무는 일의 저 무욕/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별빛 총총해질 때까지라고 진술하고 있다.”

 

손이 내게 가르쳐 준 교훈은 너른 부처님 품 안에서 공부하고 베풀며 존중하며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은혜가 되고자 하는 삶일 게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