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홀로 지내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4-20 
+ -

홀로 지내는 일의 어려움

thumb-20200323091022_a866cd5715a87ee21b560ec789ecdc22_812g_220x.jpg

 
석가족 출신의 스님 메기야 존자는 아난다 존자 이전에 부처님의 시자였습니다. 어느 날 메기야 존자가 부처님에게 다가와서 작별인사를 올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제 잔뚜가마 마을에서 탁발하고 돌아오는 길에 끼미깔라 강가를 따라 산책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망고나무 숲을 발견했습니다. 그 숲에 머무른다면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았습니다. 이제 그 망고나무 숲으로 가서 저 홀로 수행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수행하기에 딱 맞는 곳을 찾아냈고, 그곳에서 홀로 수행하려고 한다는 제자의 결심이 장해 보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메기야여, 조금만 있다가 갔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우리 둘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수행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려무나.”
 
얼핏 보면 부처님에게는 지금 시자인 메기야 존자 한 사람만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제자가 와서 당신을 도와줄 때까지 곁에 있어달라는 부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주석서에서는 부처님이 메기야 존자가 아직 홀로 숲에서 수행하기에 마음공부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에 이런 이유를 대면서 말렸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메기야 존자는 부처님의 부드러운 거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자기가 보아둔 숲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홀로 머물며 수행하기에 아주 그만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제발 보내달라고 거듭 청했습니다. 심지어 메기야 존자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제가 세존 곁에 있어도 달리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수행해서 깨달음을 이루려고 출가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제가 그곳으로 가서 홀로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렇게까지 청하는데도 부처님은 만류했고, 제자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부처님은 그가 수행처로 떠나도록 허락했습니다.
 
메기야 존자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홀로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깊은 숲 속에서 홀로 선정에 든다’는 것을 마침내 하게 되어서 그는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 누구의 참견도 받지 않고 홀로 지내니 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삶이겠습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메기야 존자는 그 ‘홀로 지냄’을 그만 두고 부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는 부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망고 나무숲에서 지내는데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욕망과 분노와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 수행하면서 제 마음을 잘 다스렸다고 생각했는데 숲에서 홀로 지내다보니 이런 생각에 마음이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부처님을 졸라서까지 홀로 깊은 숲에 들어갔는데 정작 욕망과 분노와 폭력에 마음이 끓어올라 더 이상 숲에서 홀로 지내지 못하고 돌아와서 고백하는 메기야 존자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진지해 보입니다.
 
부처님은 그가 틀림없이 며칠 지나지도 않아 다시 돌아오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그 마음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단단히 마음공부를 하라는 뜻에서 숲 속에서 홀로 지내려는 그의 뜻을 말렸지만 본인이 워낙 강력하게 원하니 어쩔 수 없었지요. 스스로 부딪쳐서 깨닫는 수밖에요. 아무튼 참 잘 됐습니다. 메기야 존자는 이로 인해 부처님에게서 아주 소중한 법문을 듣게 됐으니 말입니다.
 
부처님은 가장 먼저 그의 마음이 무르익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마음공부가 잘 되지 않아서 주변 환경에 쉽게 흔들리고 그러다보니 홀로 있어도 수많은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무르익지 않은 마음으로 홀로 지내다보면 오히려 많은 감정에 휩쓸리고 그러다보면 번뇌가 솟구쳐서 뜻하지 않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무르익지 않은 사람이 챙겨야 할 다섯 가지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좋은 친구입니다. 늘 내 자신을 향상시키는 사람, 내 잘못을 지적해서 선한 쪽으로 돌려세우는 사람이 좋은 친구이지요. 이런 좋은 친구는 사람의 마음을 단단하게 성숙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두 번째는 반듯한 생활입니다. 종교적인 차원에서는 계율을 잘 지키는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선악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고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며, 사소한 잘못에도 부끄럽고 두려워할 줄 아는 일입니다. 평소 이런 반듯한 생활을 익히는 것이 마음을 단단하게 성숙시켜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지요.
 
세 번째는 평소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중요성입니다. 마음을 완강하게 닫아걸지 않고 선하고 깊이 있는 쪽으로 마음을 활짝 열 수 있는 이야기를 자주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줄이는 이야기, 적은 것에 만족하는 이야기, 홀로 한가하게 머무는 이야기, 괜히 무리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을 멈추는 이야기,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나 참선과 관련한 이야기 등입니다. 평소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익히는 것 역시 마음을 단단하게 성숙시켜주는 세 번째 요소입니다.
 
네 번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부지런히 이어가는 일입니다. 특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과 남에게 도움이 되고 이웃과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평소 해오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이 또한 마음을 단단하게 성숙시켜 주는 네 번째 요소입니다.
 
다섯 번째는 평소 지혜를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해박하다는 차원의 지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이유로 발생하고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 일련의 과정을 꿰뚫는 지혜를 키워야 합니다. 그러면 살면서 불쑥 불쑥 엄습하는 괴로움이나 두려움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지혜를 키우는 것 또한 마음을 단단하게 성숙시켜 주는 다섯 번째 요소입니다.(앙굿따라 니까야)
 
부처님은 이렇게 평소 다섯 가지를 통해서 홀로 지내도 괜찮을 정도로 마음을 단단하게 익히고 공부시키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메기야 존자는 이런 법문을 들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평소 자신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을 테고, 조금 더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충만하게 혼자만의 삶을 만끽하고 싶었을 테지요. 하지만 마음이 무르익지 않은 사람이 홀로 지내는 일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보다 역효과를 부르는 일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는 게 너무 힘들 때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소리 없이 지내고 싶습니다. 인간관계에 지치면 동굴에라도 들어가서 연락을 끊고 홀로 지내고 싶은 생각이 사무치지요. 많은 사람들이 혼족의 삶을 선택합니다. 혼족이란 혼자 지내고 무엇이든 혼자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형편이 따라주지 않아 홀로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혼족은 그와는 달리 스스로 혼자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혼족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완벽한 혼족도 아니지요. 손에서 24시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않는 삶을 과연 혼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언제 어디서든 지구 끝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연결되는 SNS를 즐깁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면서 이웃들의 조회수와 ‘좋아요’ 숫자에 매달리고 있지요.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머문다고 하지만 정작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굳이 커피전문점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나 홀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 공간 안에 다른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편안함이 그리도 필요했던 것일까요?
 
최근 세상을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고, 자가격리 요청을 받은 사람들도 불어났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홀로 머물러야 ‘옳은’ 세상이 되었지요. 하지만 사람이 홀로 머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확인했습니다. 내 가족끼리만 지낸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임을 확인하기도 했지요. 자가격리 원칙을 무시하여 법의 통제를 받는 이들이 속출하고, 며칠만 더 집에 머물라는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문을 열고나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우리는 외로운 존재이며 다른 이의 관심을 그리워하는 존재인 것을요. 불편함을 넘어 인간은 홀로 지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 속에서 진정으로 홀로 지내기를 원한다면 부처님이 권한 다섯 가지 요소를 익히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섯 가지 요소를 통해 내 마음이 단단하게 무르익었을 때만이 홀로 지내도 욕망과 분노 등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혼족의 삶은 결국 홀로 지내기 위한 마음공부부터 해두어야 가능한 일임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20200413 홀로 지내다 삽화.jpg
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