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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힘내시라, 지금 여기가 맨 앞

밀교신문   
입력 :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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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75만 명이 감염됐던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의 공포와 불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문밖출입을 꺼리고 거리는 온종일 사람을 찾아볼 수 가없다. 불안과 공포의 수위를 넘어 극심한 심리적 트라우마로 온 나라가 패닉 상태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전염병이 돌면 마스크가 우리를 지켜줄 유일한 방패라 믿게 되었다. 집안에서도 신종 코로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종일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박노해 시인은 새로운 전염병이 세계를 떠돌자/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공포가 되고 말았다/ 사람이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서로 영혼의 마스크를 낀 지 오래 되었으니까/ 인간은 인간에게 탐욕의 전염병이 되고/ 인간은 서로에게 폭탄이 된 지 오래이니까라고 그의 시 <마스크>(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 노래하고 있다.

 

리 모두는 전염병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무기력하다. 이 모두가 인간이 저지른 탐욕이 부른 결과이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2016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포유류 천산갑에서 나온 균주 샘플과 일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몸에 좋다면 서슴지 않고 동물들을 살생하는 인간의 욕망이 부른 대참사, 대재앙이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머물고 계실 때 나라라는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갔다. 그 소식을 듣게 된 부처님께서 마을로 내려가 병에 걸린 사람들,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편안하게 마음을 위로하며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고 발심하라고 권한다. 경전에 따르면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들이 부처님 교화에 겁을 내어 한꺼번에 달아났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전염병이 사라지자 마을을 깨끗이 청소하고 꽃과 향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감사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대재앙인 바이러스 전쟁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것 인가가 관건이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태를 심각하게 증폭시킨다.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힘을 합쳐 이 난국을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해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누구나 국적과 지위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코로나 감염자가 될 수 있다. 감염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범죄자처럼 이름 대신 5, 9, 36번 등 돌연 번호인간으로 불리며 사회와 격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는 전염성은 강하되, 치사율은 낮은 편이라 하나 전염병의 최대 적은 불안, 공포, 불신, 원망, 분노라는 숙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종단 창종 이래 새해49일 불공과 자성일 대중공식불사에 신교도 동참 불공을 금지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19는 종교, 문화 집회의 모임을 자제하고 중단해줄 것을 요구하는 안전안내 문자는 그만큼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국가재난으로까지 선포했다. 심인당에서 오랫동안 수행하던 노보살님들은 자성일 대중공식불사를 안 지킨다는 것은 상상을 넘어 신심을 저버리는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각 심인당마다 주교의 재량으로 동영상을 제작해 만든 온라인법회도 생각해 볼 때이다.

 

마스크를 왜 착용하세요. 부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실 텐데요.”라는 맹신적 믿음보다는 이번 사태는 굳건한 믿음의 차원을 뛰어 넘어 대승적 육행실천이 필요하다. 이웃을 살리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나를 살리는 것이 이웃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라니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저마다 영혼의 마스크를 잃은 지 오래다. 이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에서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부분) 생각나는 시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 너무 길다. 신종 코로나19를 지나 성큼 봄이 내게로 아니, 우리 모두에게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부디 힘내시라, 지금 여기서 선업 쌓기를 서원하자.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맨 앞이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