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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철들고 싶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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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고 설날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덕담을 주고받으며 잊지 않는 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복이 있지요. 인복(人福)과 재복(財福)입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이 인복이고 재물이 넉넉한 것이 재복입니다. 그런데 인복이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하심(下心)]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잘 났다고 하는 사람 누구도 좋아하는 사람없지요. 재복이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베풀기[희사(喜捨)]를 좋아해야합니다. 인색한 사람에는 재물이 붙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희사하고 하심 많이 하세요.’라는 말로, 정말로 좋은 덕담입니다. 희사하고 하심하는 그런 넉넉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건강 복'도 덤으로 따라 옵니다. 경자년 새해 기필코 모두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야 됩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됨에 따라 올해는 더 철이 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이를 먹고 철이 든다는 것은 한 해 한 해가 더할수록 생각과 처신이 원만해가는 것입니다. 철이 든 사람들의 특징은 매사에 있어 일희일비 하지 않으며 불평불만이 적습니다. ‘득실무착(得失無着) 우희부동(憂喜不動) 수미(須彌)같이 안주(安住)하면진각교전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처럼, 이것이 곧 지자(智者)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얻는 것이 있거나 잃는 것이 있더라도 거기에 집착함이 없이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기쁘거나 괴롭거나 거기에도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수미산 같이 무겁게 마음이 편안하게 머무르는 모습이며 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공경한다고 마음이 펄펄뛰고 하지 않고 누가 경만해도 진심과 성냄이 없이 그 마음이 바다같이 넓고 깊습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일의 성취에 관한 것이든 말입니다. 그러면서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한편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을 더해가며 시절을 알아가는 것이고 시절을 알아간다는 것은 오고 가는 계절과 시간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해간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철이란 지혜, 사리분별의 능력입니다. 우리말에 철부지라는 말이 있는데, ‘철이 없거나 철을 알지 못한다.’라는 의미로 지혜가 없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그리고 이라는 것이 계절을 더 잘게 나눈 '절기'라는 뜻도 됩니다.

 

씨를 뿌려야 할 때, 밭을 갈아야 할 때, 물을 주고 거둬들일 때를 아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계절이 오고 가는 것과 절기가 들고 나는 것도 모르는 정도로 어리석은 자 이것이 바로 철부지인 것이지요.

 

한 유명 방송작가의 에세이집 속에는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배신당하고 상처받은 존재에서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는 존재인 것 알아채는 것이다.”라는 멋진 구절이 있습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요즘, 나는 철이 든 어른인가에 대하여 고민해 봅니다.

 

계절이 더할수록 나이를 먹는 법이니 이에 비례하여 철도 드는 것이 당연하겠지마는 나이를 먹는다고 다 철이 드는 것이 아니니, 나이만 먹어가는 꼴통 철부지 어른은 아닌지. 내가 받았던 상처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움과 원망의 틀 속에 자신과 상대를 묶어두고, 줄곧 내 힘든 것만 토해내는 나이만 먹은 어른 어린아이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나이 값하는 성숙한, 철이 든 어른이 되어가야겠지요. 행여나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지는 않았는지. 나는 그 상처들을 품어주고 감싸 안아주는 사람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입혔을 상처에 대해 참회하고 참회하는 모습으로 철이 든 어른으로 익어가는 새로운 하루, 새로운 계절, 새로운 한 해이고 싶습니다.

 

회당대종사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어 익어 가면 고개를 숙여 겸손을 드러내고 영양으로 생명을 보호해주고 살찌게 도와주고서 씨만 남기고 철따라 자기 할일을 다하고 나면 사라져 버린다.”(실행론:3-2-1)라는 가르침으로 철따라 각자의 사명을 다하여 개성을 발휘하는 이것을 진실한 삼밀행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상대자의 모습에서 내 인연을 볼 줄 아는 것이 내인과를 볼 줄 아는 것이고 부처님 가르침의 철이 드는 것입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