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믿다(2)

밀교신문   
입력 :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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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첫 번째 재산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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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늘 상대를 업신여겼지요.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일 거야.”
 
그러나 업신여김을 당한 친구는 이런 조롱을 그리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늘 부처님 가르침을 듣는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수많은 법문 중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법(知足法)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업신여기는 친구에게 이런 노래를 불러주었지요.
 
“세상에서 으뜸가는 이로움은 병이 없는 것이요, 세상에서 으뜸가는 재물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요, 세상에서 으뜸가는 친구는 좋은 벗(선지식)이요, 세상에서 으뜸가는 즐거움은 열반이라네. 내 보물은 믿음이라서 아무도 빼앗아가지 않으니 믿으면 마음이 평화롭고 즐거우며어떤 근심, 걱정도 괴로움도 없다네.”
 
남자는 이렇게 노래를 불러주고 나서 자신을 업신여기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부자라네. 그런데 지금 자네는 왜 나를 가난하다고 하는 거지? 창고에 온갖 재물이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그는 가난한 사람일세. 명심하게나. 부처님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최고 부자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두 친구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이 ‘가난한 남자’의 노래가 끝나자 입을 모아 칭송했습니다.
 
“아, 참 좋은 말씀입니다. 참으로 지혜롭고 바른 말씀입니다. 당신이야말로 대장부입니다.”
 
사람들은 거듭 말했습니다.
 
“오늘부터는 재물이 없더라도 믿음만 있으면 그 사람을 우리는 부자라고 하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돈을 벌고 재물을 모으는 이유는 즐겁게 살기 위함이요, 가족이 넉넉하고 즐겁게 누리게 하기 위함이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오는 즐거움은 그저 이 현세의 몸을 위하는 일일 뿐입니다. 대신, 믿음이라는 보물을 가진 사람은 현세뿐만이 아니라 다음 생, 그 다음 생에도 풍요로운 곳에 태어나게 해줍니다. 그러니 믿음이야말로 세상에서 으뜸가는 재물인 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벌어들이려고 애쓰는 재물은 늘 우리에게 불안과 괴로움을 안겨줍니다. 더 벌지 못해 괴롭고 줄어들까 괴롭고 빼앗길까 괴롭습니다. 벌면 벌수록 힘이 듭니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재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노병사 하는 삶의 길에서 우리에게 늘 즐거움을 줍니다. 그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계를 지킬 수 있고, 다른 이에게 베풀 수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참선할 수 있고 지혜를 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이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이야말로 세상에서 으뜸가는 재물입니다. 우리도 이런 재물을 지녔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제 입으로 ‘나는 큰 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예전에 선업을 깊이 쌓아왔기 때문이요, 이 믿음 때문에 지금 지니고 있는 재물에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대장엄론경>의 이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내용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용이 앞뒤가 달라져 있음을 눈치 채게 됩니다. 부자의 기준이 옮겨간 것이지요. 처음에는 만족할 줄 아는 것 즉 ‘지족’이 부자라고 하더니, 어느 사이 ‘믿음’이 부자의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경을 읽는 묘미입니다.
 
먼저,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부자의 기준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렇습니다.
 
욕심을 줄여라.
 
만족할 줄 알아라.
 
한문으로 소욕지족(少欲知足)이라고 하는 이 말을 사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들어왔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다 가진 사람이 부자요, 일단 많이 가져야 부자라는 생각이 너무나 깊기 때문입니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렇습니다. 이 사람도 나보다 더 많이 가졌고, 저 사람도 나보다 더 많이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세상에는 부자가 저리도 많은데, 나는 왜 부자가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저 사람이 가졌는지 살피고 푸념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미 웬만한 것을 다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살 만합니다. 부자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젠 됐어! 난 충분히 가졌어!”라고 자신 있게 소리 내어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교만이 아니라 지족(知足: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경전의 첫 번째 메시지는 이와 같습니다. 
 
이번에는 ‘믿음’을 부자의 기준으로 삼은 경전의 두 번째 메시지를 말씀드려볼까요?
 
누구나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면서 ‘그래, 이만하면 됐다. 넉넉하게 먹고 살만하니 부자라 해도 좋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쉽게 흔들립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수 있으니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살림을 보면서 자신이 부자라는 생각은 쉽게 흔들립니다. 나보다 무엇인가 하나 더 가진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도 널렸습니다. 그러면 생각이 딱 이렇게 바뀝니다.
 
“뭐야, 저 사람은 저런 것도 가지고 있네? 그런데 조금 비싸 보이는 걸?”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이 가엾어집니다. 남들은 세상을 거침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나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한없이 쪼그라들지요. 이럴 때는 ‘욕심을 줄이고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라’는 가르침은 힘을 받지 못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가르침에 대한 믿음, 이런 가르침을 주는 진리의 스승을 향한 믿음입니다. 진리의 스승은 몸으로 먼저 살아본 사람입니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가서 틀림이 없다는 확신을 증명해보인 선지식이지요.
 
그런 스승이 일러주는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아보니 틀림이 없더라는 확신, 그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소신껏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품지 못한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며 자꾸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부의 기준이 외부에 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행복할까, 저렇게 하면 행복할까 고민하고 그 행복의 기준을 맞추려고 애쓰며 살다가 한 번도 행복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경전에서도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왕이면 남에게 빼앗길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보물을 지닌, 진짜 부자가 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믿음’이란 재물이 바로 그 첫 번째 진짜 재산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지니면 다음의 네 가지 재산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합니다. 그 두 번째 재산은 바로 계행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빼앗지 않고, 그릇된 이성관계를 맺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말하며, 술과 같이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을 마시지 않는 일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꼭 불교신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바르게 유지하려면 이 다섯 가지는 필수조항입니다.
 
세 번째 재산은 베풂(보시)입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꺼내어 다른 이에게 주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누군가에게 나눠줄 것은 다 지니고 있습니다. 내 주머니 속의 것을 다른 이에게 기분 좋게 건네는 일은 두 가지 기분 좋은 결과를 불러옵니다. 첫 번째는 현실적으로 좋은 일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마음속에 인색함이라는 번뇌가 줄어듭니다. 이 두 가지 좋은 과보를 불러오는 행위가 바로 보시라는 점을 경전에서는 거듭 강조합니다.
 
네 번째 재산은 참선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한곳에 집중시키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산란하게 살아갑니다.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은 ‘나’인 것에 틀림없건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이곳저곳을 마구 헤매고 다니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갑니다. 선방을 찾아가서 치열하게 용맹정진하는 참선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잠깐씩 짬을 내서라도 가만히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 그 자세 그대로에서 마음을 한 지점에 모아보는 것, 이것을 부처님은 아주 중요한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재산은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조금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주는 지혜를 깨닫는 일은 다시 없이 소중합니다.
 
믿음에서 시작한 이 다섯 가지 재산이 없는 것이 가난이라고 부처님은 말합니다. 그 말씀에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신다면 당신은 이미 부자입니다. 소욕지족을 실천하고 계실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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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