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믿다(1)

밀교신문   
입력 : 2019-12-30  | 수정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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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부엌에 들어오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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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붓다이신 가섭 부처님 시절 이야기입니다. 가섭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카시국에 오셨습니다. 카시국은 지금의 갠지스강 지류에 자리한 아주 번성한 나라로, 이 카시국을 다스리던 왕은 키키(Kiki)입니다. 키키왕은 가섭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 올리기를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처님과 제자들은 키키왕의 궁전에서 맛난 음식으로 공양을 마쳤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흡족하게 공양을 하신 뒤 발우에서 손을 떼자 왕은 낮은 자리를 준비해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렇게 청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앞으로 우기 석 달 안거 기간에는 이곳에서 지내십시오. 그러면 세존과 스님들이 편안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섭부처님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기 안거를 지낼 곳은 이미 정했습니다.”
 
왕은 다시 한 번 청했고 부처님은 거절했습니다. 왕은 거듭 간청했지만 부처님의 대답은 같았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을 올려 기쁨으로 넘쳐났던 왕의 마음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왜 나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는 것일까?’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가섭 부처님에게 왕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왕의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우울해졌습니다. 왕은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보다 더 부처님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어서 그곳으로 가시려는 생각이십니까?”
 
그러자 왕의 마음을 처음부터 들여다보고 있던 가섭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웨발링가 도시에 가티카라라는 도공이 있는데 재가 신자들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입니다. 대왕께서는 내가 우기 석 달 동안 바라나시에서 머물라는 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지금 크게 실망하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티카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나 여래를 대하면서 실망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는 그러할 것입니다.”
 
도기(ghaṭi)를 만드는 사람(kāra)이란 뜻의 가티카라는 일찍부터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고픈 바람을 품었지만 늙고 병든 부모님을 모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도기를 만들어 생계를 이으며 지내고 있었지요. 이런 그의 형편은 요즘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티카라는 좀 다르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기를 빚으려면 흙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삽이나 손으로 땅을 파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작업하다 남은 흙이나 쥐가 파헤쳐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흙을 딱 필요한 만큼 가져와서 도기를 빚습니다. 그리고 그릇이 다 만들어지면 집 앞에 내다놓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여기 도기가 있으니 필요한 사람은 와서 가져가십시오. 적당하다 생각하는 만큼의 쌀이나 곡식을 가져와서 도기 값을 치르면 됩니다.”
 
이런 정도라면 가티카라 집 형편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겨우 늙은 부모의 식사를 차려드릴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는 시간이 나면 부처님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사유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재가신자 가티카라를 가섭 부처님은 왕에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가장 센 권력과 많은 재산을 지닌 왕의 청을 거절하고 이렇게 가난하기 짝이 없는 가티카라의 동네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왕이 부처님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자 가난한 가티카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여래에게 그런 마음을 품지 않고 오히려 커다란 기쁨을 일으킨다는 걸 들려주고 계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이제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가섭 부처님이 아침에 가티카라의 집으로 찾아가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부모는 말했지요.
 
“가섭 부처님, 부처님의 신자 가티카라는 지금 일이 있어 밖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부엌에 들어가 보시면 솥에 밥이 들어 있고 국도 조금 있을 것입니다. 그걸 꺼내 드시지요.”
 
가섭 부처님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마치 당신의 집인 것처럼 부엌으로 들어가서 손수 솥과 냄비를 열어서 밥과 국을 떠서 드시고 가셨지요. 부처님이 떠난 뒤 돌아온 아들 가티카라는 부엌에 음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부모님에게 물었습니다.
 
“가섭 부처님께서 왔다 가셨단다. 손수 부엌에 들어가셔서 음식을 꺼내 드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셨지.”
 
가티카라는 이 말을 듣자 말할 수 없이 커다란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내가 급한 일이 있어 집을 비웠는데 손수 부엌으로 들어오셔서 밥과 국을 떠서 공양을 드시고 떠나셨으니, 가섭 부처님께서 이렇게 나를 믿고 계시는구나. 부처님께서 나를 믿고 계신다는 사실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도공 가티카라는 보름 동안이나 말할 수 없는 행복에 사로잡혔고, 그의 부모 역시 칠 일 동안이나 기쁨에 휩싸여서 지냈습니다.
 
이 일 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다른 때에 부처님은 가티카라의 집에 탁발하러 가셨다가 손수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보리죽을 꺼내서 공양을 드신 뒤 떠나가셨을 때에도 가티카라는 ‘부처님은 나를 믿고 계신다’라고 생각하면서 보름 동안이나 커다란 행복에 잠겼고 그의 부모 역시 칠일 동안 기쁨에 휩싸여서 지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가섭 부처님 움막 지붕이 새서 급히 보수를 해야 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불러 가티카라의 집에 지붕을 이을 풀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스님들이 그의 집을 살펴본 뒤에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가티카라의 집에는 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업장 지붕은 풀로 덮여 있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가티카라의 작업장에 가서 풀을 벗겨오라고 일렀습니다. 스님들이 작업장 지붕에 올라가 풀을 벗기자 그 소리를 들은 가티카라의 부모가 소리쳤습니다.
 
“대체 누구십니까? 누가 우리 아들의 작업장 지붕에서 풀을 벗겨가고 있습니까?”
 
스님들이 답했습니다.
 
“가섭 부처님 움막 지붕에 비가 샐 지경입니다. 그래서 풀을 가져다 덮으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늙은 부모는 “어서 가져가십시오”라고 말했고, 뒤늦게 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가티카라는 역시나 ‘부처님은 이토록 나를 신뢰하고 계신다’라면서 보름이나 기쁨에 휩싸였습니다. 그 후 안거 석 달 내내 비가 내렸지만 그 작업장으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경에서는 말합니다.
 
<맛지마 니까야> ‘가티카라경’에 들어 있는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어리둥절했습니다. 이게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일까요? 따지고 보면 가섭부처님은 좀 심하다 싶습니다. 제집인양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과 죽을 먹어버리고 떠나가지 않나, 가난한 도공의 작업장 지붕을 덮고 있는 풀을 뜯어오라고 지시하지를 않나…. 그런데 가티카라와 앞을 보지 못하는 늙은 부모는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처님이 자신을 이토록 깊이 믿고 있다면서 커다란 기쁨에 휩싸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처님을 믿는다”라고요. 아직은 불완전하고 욕망덩어리인 내가 구원 받기 위해 내 자신을 탁 맡겨버린, 그 믿음의 대상은 바로 모든 것을 완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입니다. 중생이 부처를 믿는다-이 구조는 당연합니다. 그런데 가섭부처님은 당신의 속가제자인 가티카라를 믿었습니다. 부처가 중생을 믿는다는, 정반대 방향인 것이지요.
 
부처님은 가티카라가 스승에게 한없이 커다란 믿음을 지니고 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티카라는 스승을 향해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저 기쁘고 행복할 따름이었습니다. 부처님이 당신의 입장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가난한 제자의 집 부엌에 들어가서 변변찮은 먹을거리를 당신 손으로 퍼서 드시고, 당신 움막에 비 샐 것을 염려해서 제자의 작업장 지붕을 뜯어도 제자는 부처님을 이해하고 오히려 ‘부처님이 나를 믿는다’라며 커다란 기쁨에 젖어 지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내맡기고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는 일, 바로 이게 ‘믿음’ 아닐까요?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 그저 기쁨만을 얻는 것이 믿음입니다. 당신을 믿으니 내 청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해도 어디를 가도 나는 행복하다는 그 마음-가장 부유하고 힘이 센 왕과 가장 가난한 도공이 부처님을 향해 품은 믿음의 차이는 이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부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해 왔지만 새해에는 부처님이 나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난한 부엌에 부처님이 빈 발우를 들고 들어오셔도 마냥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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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