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울다2

밀교신문   
입력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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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아난다여.
“아난다는 어디 있는가?”
늙은 부처님이 물었습니다. 두 그루 사라 나무 아래에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우셔서 지상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부처님입니다. 그런 부처님 곁에 꼭 있어야 할 아난다 존자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지금 방에 들어가서 울고 있습니다.”
 
아난다를 대신해서 부처님 곁을 지키던 제자가 답했지요. 그의 대답은 이어집니다.
“아난다 존자는 문간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습니다. ‘난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이 남았는데 이제 나를 이끌어주실 스승님은 내 곁을 떠나려 한다. 내가 어느 생에 태어나더라도 이제는 그 분을 다시 뵐 수는 없다.’라면서 구슬프게 울고 있습니다.”
 
제자의 대답을 듣자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서 가서 아난다를 불러오너라. 내가 그를 부른다고 가서 말해라.”
 
아난다 존자는 25년을 그림자처럼 부처님 곁을 지킨 시자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부처님의 마음을 잘 파악해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그 뜻을 잘 따른 제자였습니다. 결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았고, 그렇다고 마냥 부처님을 졸졸 따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처님을 위하여 자신을 내려놓았지만, 대중을 대신해서 부처님에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과 대중의 뜻을 어기지 않았고, 그 마음들을 다치지 않았고,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온 시자였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난 뒤 각자의 인연을 따라 흩어졌지만, 아난다 존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55세의 부처님을 모신 이래 부처님이 80세에 이르러 생의 마지막 날에 이를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중년의 위엄 있고 원숙한 스승은 언제나 시자 아난다의 자랑이었습니다. 큰 나무 같았고 깊은 그늘 같았습니다. 언제나 돌아가 기댈 수 있는 너르고도 단단한 바위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부처님은 자주 병을 앓았습니다.
 
늙음이 불러오는 병고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맨발로 길을 걸으며 하루 한 끼 탁발로 평생을 지내오시던 부처님은 어느 때인가는 초라한 움막 안으로 들어가서 며칠을 꼼짝도 않고 계셨습니다. 가만히 문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난다 존자는 알고 있습니다. 육신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지금 겪고 계신 중이라는 걸 말이지요.
 
며칠을 문밖에서 애태우며 발만 동동거린 적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시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고,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 밖으로 나와 나무 아래에 앉은 부처님을 향해 아난다존자가 한달음에 달려와서 이렇게 외쳤지요.
 
“아아, 부처님. 이제야 나오셨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모습을 보여주시니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병을 앓으시는 동안 저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서 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습니다. 저는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나직하게 대답하시죠.
 
“아난다여, 나는 지금 늙었다. 내 나이 여든을 넘어섰다. 지금 여래의 몸은 낡은 수레를 밧줄로 동여매서 힘겹게 이끌고 가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하지만 깊은 선정에 들어 있으니 괴롭지 않고 평온하다.”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을 담은 경 <대반열반경>의 이 대목을 읽을 때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 위대한 가르침을 들려주시던 부처님도 세월이 흐르면 늙고 병들고 이윽고 부서지게 된다는 걸 이렇게 그 몸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나 아직 짱짱하다’고 몸부림치는 세속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몸은 속속 부서져가고 있지만 선정에 들어 스스로를 잘 챙기는 까닭에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몸마저도 평온하다는 것이 부처님의 늙음의 경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 낡아서 부서질 판인 수레를 칭칭 동여매서 끌고 가는 것과 같은 늙은 스승을 모시고 매일 아침 맨발로 탁발에 나서는 제자 아난다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눈앞에서 하루하루 부서져가고 있는 부처님을 모시고 맨발로 길을 걸어서 천천히 마지막 자리인 쿠시나라에 이른 시자 아난다 존자!
 
이윽고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마련하고 누우신 부처님에게 이제 정말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의연하던 아난다 존자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부처님 곁을 떠났습니다. 임시로 마련된 조촐한 방으로 뛰어 들어갔을 터이지요. 행여 자신의 흐느낌과 통곡으로 평온한 마지막 순간을 맞으실 부처님에게 누를 끼칠까 염려스러워서 그리 했을 것입니다.
 
그런 아난다 존자를 잘 알기에 부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부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난다 존자는 서둘러 눈물자국을 지우고 흐느낌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자신의 그 자리, 부처님 곁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난다의 마음속에 울음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처님은 이렇게 말을 건네십니다.
“울지 마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알아주고 아껴주고 일깨워주고 편이 되어준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이 오죽할까요? 큰 바위처럼 기대어 살아왔는데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대지가 흔들리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이 슬픈 아난다에게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여, 내가 오래 전부터 그리도 말하지 않았더냐? 세상에서 아무리 사랑스럽고 맘에 드는 것이라 해도 그 모든 것들과는 헤어지게 마련이라고 말이다. 원래가 그런 법인데 슬퍼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며 지내오는 모든 것들은 모두가 부서지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두고서 ‘부서지지 마라, 흩어지지 마라, 변하지 마라’고 한다면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이겠느냐? 그런 법은 없다.”
 
아난다 존자가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에게 세상 모든 것은 무너지게 마련이라는 이치를 일러주시던 스승의 소멸 앞에서 그는 전율했을 것입니다.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던가? 나를 아껴주고 나를 위해서 머물러 줄 수 있는 것은 진정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없다고 부처님은 당신의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지요. 언제든지 스승님께 나아가면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언제라도 최고의 성자인 아라한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 ‘언제든지’는 속절없이 사라지고 말았기에 아난다 존자의 눈물은 더욱 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의 이 눈물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과의 이별 때문만이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은 흩어지고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엄연한 진리에 속수무책 무릎을 꿇은 한 존재의 탄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당신을 한마음으로 모셔온 제자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에 몸과 말과 생각에 자애를 담아서 여래를 곁에서 도와주었다. 그대의 도움으로 나 석가모니는 세상의 교화를 마치고 반열반에 드니, 이제 그대의 시간이다. 그대는 쉬지 말고 정진하라. 곧 아라한을 이룰 것이다.”
 
부처님에게서 성불의 기별을 받는 것을 수기라고 합니다. 아난다 존자가 이룰 아라한의 경지는 성불과는 한참 떨어져 있지만 아라한이란 자리는 당시 제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였습니다. 당신 때문에 뒤처졌던 제자, 당신이 떠나고서야 그 제자는 자신의 수행의 목적을 완성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 그런 제자를 대할 때마다 부처님 마음은 어땠을지요.
 
수많은 보살들이 자신의 서원을 이루지 못하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노라며 결기어린 사자후를 토했지만, 아난다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아라한이라는 해탈열반의 경지를 조용히 미뤄왔습니다. 수많은 도반들이 자신보다 앞서 높은 경지에 속속 이르지만 그는 여전히 낮은 자리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며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제자에게 마지막 선물인 수기를 주셨지요.
 
여전히 공부해야 할 것이 남아 있어서 인간적 정리에 흐느껴 우는 제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건네는 그 든든한 ‘수기’-이런 제자의 눈물과 이런 스승의 선물이 있는 곳이 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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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