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울다(1)

밀교신문   
입력 : 2019-11-25  | 수정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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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흘린 눈물은 바다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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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따짜라라는 이름을 지닌 여인이 있었습니다.
 
코살라국의 수도인 슈라바스티의 아주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지요. 부모에게는 사랑하는 딸에게 잘 어울리는 훌륭한 가문의 청년을 배필로 맞아들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습니다.
 
행여 딸이 엉뚱한 남자를 사귀기라도 하면 큰일이어서 부모는 이 딸의 바깥출입을 엄하게 금했지요. 하지만 이런 보호가 딸의 인생을 부모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흐르게 했습니다. 딸은 자신의 시중을 들던 천한 신분의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지요. 그런 줄도 모르고 부모는 자신들의 재력에 걸맞은 집안의 청년을 물색해서 딸의 혼사를 추진했습니다.
 
결혼날짜가 다가오자 딸은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다른 이와 결혼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도 사회는 그 무엇보다도 신분제도에 엄격했기에 딸의 사랑은 처음부터 맺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잣집 딸인 빠따짜라는 마음을 굳힙니다.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둘이 도망치기로 말이지요. 그래서 두 사람은 한밤중에 집을 나와 어느 먼 지방으로 숨어들어가 살림을 차렸습니다. 부모의 집에서처럼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온종일 그 누구의 눈치도 감시도 받지 않고 지낼 수 있으니 그만하면 됐지요.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어 빠따짜라가 임신을 했습니다. 하루하루 배가 불러오자 그녀는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인도의 풍습도 그랬지요. 임신한 여인은 만삭이 되면 친정집에 가서 해산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잖아도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을 베풀어준 부모님에게 늘 죄를 지은 기분이었습니다. 만삭이 되어 돌아가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이 자신과 남편을 받아줄 것이라는 생각도 작용했지요.
 
그런데 남편은 반대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재력가인 아내의 집안에서 자신을 사위로 받아줄 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내쫓기는 것도 모자라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음을 알고 남편은 친정으로 가겠다는 아내를 말렸습니다. 가고 싶다, 보내줄 수 없다… 부부가 실랑이를 벌이던 중에 아이는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러 또다시 임신을 했습니다. 이번만큼은 꼭 친정으로 가서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아내를 남편은 말리지 못했습니다.
 
큰아이는 안고 만삭이 된 아내를 부축해서 남편은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다 길에서 그만 큰 비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지요.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비를 피할 만한 곳을 알아 볼 테니까.”
 
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길 위에서 홀로 둘째 아이를 낳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간신히 몸을 추스른 아내는 갓 낳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와 함께 남편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독사에 물려 죽은 남편의 시신이었습니다. 아내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자신과의 사랑 하나로 야반도주해서 살아왔고, 자기 고집 때문에 길을 나섰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만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서럽게 울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지만 더 이상 길에서 머뭇거릴 수는 없었습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이제 아장아장 걷는 큰아이 손을 꼭 붙들고 친정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찌라바티강에 이르렀습니다. 이 강만 무사히 건너면 그리운 친정집에 닿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난밤에 내린 큰 비로 강물은 크게 불어났고, 유속도 셌습니다. 자신들을 건네줄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먼저 갓난아이를 안고 강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간신히 갓난아이를 건너편 강둑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뒤 다시 강을 건넜습니다. 건너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큰아이를 데리고 와야 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녀가 강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두 발로 갓난아이를 움켜쥐고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강 한복판에서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마구 휘저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강 건너편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아들은 엄마가 자신에게 이리로 오라고 팔을 휘두르는 줄 알고 강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불어난 강물은 어린 아이를 삼키고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하루 새에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고, 작은 아이는 매가 채갔고, 큰 아이는 강물에 휩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을 잇달아 겪은 빠따짜라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친정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비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부모가 지난밤 큰 비에 목숨을 잃어서 친척들이 모여 화장을 막 마친 뒤였기 때문입니다.
 
빠따짜라는 주저앉았습니다. 그녀의 두 눈이 멍하니 허공을 향했습니다. 초점을 잃은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행은 한꺼번에 닥친다 하지만 이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뒹굴었습니다. 산발이 되었고 알몸이 되어버렸지만 빠따짜라의 몸부림과 울부짖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송두리째 잃은 그녀를 누가 어떻게 무슨 말로 달랠 수가 있을까요?
 
정신을 잃다시피 한 빠따짜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초점을 잃은 두 눈동자는 눈물에 짓이겨진 채 허공을 휘저었고 반미치광이가 된 그녀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도달한 곳, 그곳은 부처님 계신 곳이었습니다. 때마침 사람들이 부처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듣고 있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 슬픔에 미쳐버린 빠따짜라가 알몸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를 막아섰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부처님은 알고 계셨던 걸까요?
 
“그녀를 막지 마시오.”
 
차분한 부처님 목소리에 빠따짜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벌거벗은 채서 있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누군가가 그녀의 몸에 옷을 덮어주었고, 그녀는 그제야 부처님을 향해 넋두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룻밤 새에 얼마나 많은 비극을 겪어야 했는지, 눈물을 여전히 비처럼 쏟으며 자신의 신세를 털어놓았습니다.
 
부처님은 그녀의 넋두리를 들으시더니 차분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빠따짜라여, 그대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가 시작을 알 수 없는 생을 윤회하는 동안 이러한 일로 흘린 눈물은 저 바닷물보다도 더 많습니다.”
 
부처님이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를 하면서 흘린 눈물에 대해 법문을 설하자 빠따짜라의 눈물이 서서히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부처님 아래 출가해 진지한 구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발을 씻다가 물을 뿌렸는데, 처음 뿌린 물은 이내 땅속으로 잦아들었고, 두 번째 뿌린 물은 어느 정도 흐르다가 잦아들었고, 세 번째 뿌린 물은 좀 더 멀리 흐르다가 마침내 땅속으로 잦아드는 걸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깨닫지요. 사람이란 존재가 바로 그렇다는 것을요. 아무리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도 그의 수명은 참으로 짧을 수도 있고 아주 길 수도 있으며, 그건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말이지요.
 
그 때 부처님께서 그녀 앞에 광명을 놓으며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치를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치를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부처님의 격려 속에서 빠따짜라는 무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더욱 진지하게 수행을 이어나가 최고의 성자인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덧없는 인간사에, 지독한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마침내 성자가 됐습니다.
 
누구든 살면서 이런저런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찾아오는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상의 이치를 터득하여 덤덤히 견뎌내는 힘을 갖춘 삶이야말로 진정 우리를 눈물 없는 경지로 데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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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