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결혼하다(1)

밀교신문   
입력 : 2019-10-28  | 수정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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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송이 꽃으로 인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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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한국어 번역가들마다 조금씩은 다른 표현이겠지만, 박형규 번역가의 이 문장은 음미할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어떠신가요?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꿈꿉니다.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행복하기 위해 더러는 다투기도 하지요. 남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남만큼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삽니다. 그러다 지독하게 불행한 가정을 보게 되면 ‘그래도 우리 집은 저 집보다는 낫네’ 하며 자위합니다. 예외가 없지요. 모든 가정들이 다 고만고만하게 행복하면서도 또 저마다 나름대로 불행한 이유가 있어 힘겨워합니다.

 

고만고만과 나름나름-행복을 꿈꾸며 시작한 결혼생활이건만, 아, 결국은 이런 것일까요? 씁쓸합니다. “난 저 사람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라며 결혼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저 인간 때문에 못 살겠어”라며 진저리를 치지요. 어쩌면 우리는 ‘결혼이란 것은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하지만, 그래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 싶어 하지만, 해보고 나니 안 해도 될 걸 괜히 그 난리를 피우며 결혼했구나 싶어 그게 후회스럽다’는 것에 공감을 하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도 성을 나오기 전 왕자시절에 결혼을 했고 자식까지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내려두고 출가자의 신분이 되었을 때, 결혼생활은 당연히 깨졌습니다. 이런 부처님에게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가가서 “부처님, 제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결혼적령기에 이르렀는데, 결혼을 해야 할까요?”라고 여쭙는다면, 부처님은 무엇이라 대답할까요?

 

제 짐작으로는, 부처님은 틀림없이 결혼을 하라고 축복해주실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 사람과 결혼하여 꾸린 가정을 행복하게 유지하며 늙어가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가장 큰 보람이요 행복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이런 세속의 행복을 훼방하실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재가자에게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축복하는 뉘앙스의 법문도 초기경전에서는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출가수행자 중심의 경전들에서는 당연히 결혼을 애욕의 결정체로 여기고, 배우자를 향한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기 보다는 수행을 방해하는 미련과 헛된 욕망으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정말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는 데에 결혼은 걸림돌이고 방해물이기만 할까요?

 

어떤 경전을 보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지겠지만, 부처님의 일대기와 전생담을 실은 경이나 대승경전에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뜻밖에도 결혼(혹은 결혼과 비슷한 남녀의 만남)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을 이루기가 아주 어렵다는 느낌도 받게 될 정도입니다.

 

가장 먼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이야기부터 나눠보기로 하지요.

 

멀고도 먼, 아주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참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난 청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으로, 수메다 행자입니다. 수메다란 찬탄할 만한 지혜를 갖추었다는 뜻(대불전경Ⅱ, 68쪽)을 지녔기 때문에 선혜(善慧)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 수메다 행자는 일찍이 훌륭한 스승을 찾아 집을 나왔습니다. 어딘가에 선지식이 계시다는 소문을 들으면 불원천리 달려갔습니다. 워낙 지혜로운 젊은이여서 누가 아무리 심오한 이치를 들려줘도 이내 이해하고 꿰뚫었으며, 심지어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방금 깨달은 이치를 명쾌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지혜에 감동을 받은 이들은 은전 하나씩을 주었고, 수메다 행자는 은전 5백 닢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나 한 나라 수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나라에는 엄청난 축제를 앞두고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느라 사람들이 여념이 없었습니다. 화려하게 거리를 꾸몄고, 길바닥도 정성을 다해 쓰느라 정신이 없는 중에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우리 임금님께서 연등부처님을 모시고 공양을 올리실 거랍니다. 부처님과 그 제자 분들이 지나실 거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단장하고 있지요.”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수메다 행자의 머리털이 쭈뼛 섰습니다. ‘부처님’이란 이름, 그토록 만나 뵙고 싶었던 바로 그 스승님 이름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부처님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해서 듣는다면 자신이 집을 나와 그리도 헤매고 다녔던 목적을 이루게 되겠지요.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그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부처님에게 나아가야겠습니다. 하지만 빈손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꽃이라도 사서 공양올리고 싶은데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습니다.

 

“꿈도 꾸지 마시오. 임금님이 당신 혼자서 공양 올리고 싶다면서 이 나라의 모든 꽃과 향을 다 사들였다오. 행여 숨겨놓은 꽃이 있다가 발각되면 그때는 엄벌에 처한다고 했지요.”

 

그는 난감했습니다. 세세생생 진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한 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은전이 5백 닢이나 있는데도 꽃을 한 송이도 살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때, 커다란 병을 든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여인이 들고 있는 병에는 아름다운 꽃 일곱 송이가 들어 있었지요. 이걸 본 수메다 행자가 달려가서 돈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내게 꽃 다섯 송이만 파시지요. 한 송이에 은전 백 닢씩, 자, 여기 오백 닢의 은전이 있습니다.”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몇 푼도 되지 않는 꽃인데 이리 거금을 내놓으시는 이유가…”

 

하지만 행자로부터 “진리를 깨달아 세상을 행복하게 하겠노라”는 진심어린 대답을 듣자 감동합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알겠습니다. 꽃을 팔지요. 하지만 그 대신 제가 세세생생 당신의 아내로 살게 해주십시오.”

 

여인이 먼저 프로포즈를 한 셈입니다. 수메다 행자는 망설였습니다. 지금 이 꽃이 간절한 만큼 무슨 약속이라도 하겠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자신은 언제나 출가하여 수행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속사정을 들은 여인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맹세합니다. 이후 태어나는 세상에서 언제나 당신을 따를 것이며, 당신이 무엇이든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베푼다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받아주겠다면 이 꽃을 드리지요. 하지만 들어줄 수 없다면 당신의 그 거금을 받지 않겠습니다.”

 

여인의 대답에 수메다는 조용히 자신의 전생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5백 생을 지나오면서 언제나 자신의 아내였음을 알게 되지요. 그렇다면 이 여인과 함께 보살도를 걸어왔다는 말이 됩니다. 이 사실을 알고 그는 흔쾌히 여인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기쁘게 다섯 송이 꽃을 내어주고 이어서 말합니다.

 

“저는 감히 부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을 여기 두 송이 꽃으로 대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수메다 행자는 연등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자기 몫의 다섯 송이 꽃과 아내 몫의 두 송이 꽃을 올리게 되었고, 그로써 부처님에게 법을 듣고 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게 됩니다. <수행본기경>에 실린 이야기입니다.(이 경에서는 수메다가 아닌 무구광(無垢光)이란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편의상 수메다로 말씀드렸습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이에게 결혼이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정작 경전을 읽어보면 성불과 중생구제를 향해 한 생 한 생을 살아가는 보살에게 배우자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여인이 없었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물론, 결혼을 세속에서의 행복추구로만 여긴다면 이 이야기는 황당합니다. 하지만 불자는 보살도를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결혼은 세세생생 함께 보살도를 걸어가는 도반과의 만남입니다. 고만고만하고 나름나름인 세상의 결혼 생활이라지만 그것이 도반과의 삶이라면 꽤 괜찮은 만남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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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